27일 남간마을, 성부산, 원원사지에서 역사문화 탐방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남간마을 신라시대 석정에서 삼국유사의 기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남간마을 신라시대 석정에서 삼국유사의 기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 성부산과 남간마을, 원원사지에서 올해 첫 삼국유사 기행을 진행했다.



삼국유사기행단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확진자와 접촉이 없는 인원을 대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참가 인원을 20명으로 한정했다.





이들은 먼저 명랑법사와 혜통율사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서남산자락의 남간마을을 방문했다.

남간마을은 남간사지 절터의 흔적이 있고, 마을 안쪽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정이 들어서 있다.

석정은 최근까지 마을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물 좋기로 소문 난 돌우물이다.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남간사지 당간지주 앞에서 명랑법사가 창건했다는 금광사 터를 살펴보고 있다.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남간사지 당간지주 앞에서 명랑법사가 창건했다는 금광사 터를 살펴보고 있다.


명랑법사가 용궁에서 용왕의 시주를 받아 고향인 남간마을 우물로 나와 금광사를 지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남간마을에 남아있는 우물은 전해져 온 석정이 아니다.



석정에서 500여m 떨어진 논바닥에 보물 909호로 지정된 남간사지 당가지주가 있다.

남간마을 이름도 남간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어졌단다.

마을 전체가 남간사의 사역으로 전해질 정도로 남간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명랑법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는 금광사는 금광못으로 변했는데 못의 물이 빠지고 발굴조사에서 절터의 흔적과 석조입불상 등의 유적들이 나왔다.

석조입불상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신라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기행단은 또 해발 322m 고지의 성부산을 올랐다.

성부산은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와 백제, 말갈의 군사들이 한산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것을 막고자 산 위에 단을 쌓아 제를 올려 큰 독만한 광채가 별처럼 날아가 적군의 머리 위에서 터져 무기를 부수고 군사들을 물리쳤다.

이때부터 별이 뜨는 산이라고 해 성부산으로 부르고 있다.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김유신 장군이 술법으로 별과 같은 빛을 날려 한산성으로 몰려오던 고구려의 말갈 등의 적군들을 물리쳐 성부산으로 불리는 정상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대구일보가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27일 경주지역의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했다. 기행단이 김유신 장군이 술법으로 별과 같은 빛을 날려 한산성으로 몰려오던 고구려의 말갈 등의 적군들을 물리쳐 성부산으로 불리는 정상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주 외동읍의 원원사는 김유신 장군이 술종 등의 대신들과 바다로부터 침공해오는 적군들을 막기 위해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이 사찰에서 명랑법사의 후계로 전해지는 신인종 법사들이 머물며 주문으로 적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 소장은 “원원사에는 아직 동서삼층석탑을 비롯해 석조, 석등, 부도, 석축 등의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며 “역사문화유적을 조사하고 발굴 과정을 거쳐 정비할 필요가 있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라고 해설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