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엇갈린 사랑의 끝 ~

…승희는 가위눌리던 중 휴대폰 벨소리에 잠을 깼다. 대학 제자이자 일곱 살 연하의 애인 우태였다. 작년 봄 전시회 준비로 바쁠 때 그녀의 일을 돕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집을 옮기고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 자신을 정리하고자 하는 낌새를 눈치 채고 힘들어했다. 그녀는 매정하게 폰을 끊어버렸다. 우태를 유혹한 건 그녀였다. 그녀는 삼십대 후반이긴 했지만 괜찮은 미모와 빵빵한 재력에다 미대 교수라는 지위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떤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구속받지 않고 즐기는 타입이었다. 우태도 그냥 스쳐가는 소모품 정도였다. /그녀도 마흔에 가까워지자 믿음직한 남자를 만나 정착하고 싶었다. 그때쯤 그 남자를 만났다. 멀쩡한 집을 두고 갑자기 그 남자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남자의 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폰을 들고 전화를 했다. 잘못 걸었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가슴이 아파왔다. 한 달쯤 전 그 남자를 만났다. 비 오는 날 그 남자의 차를 들이받았다. 그녀는 별로 다친 곳이 없었으나 그 남자는 팔과 다리를 다쳤다. 큰 부상을 입고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의연하게 뒤처리하는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그 남자가 입원해있는 보름 동안 승희는 수시로 들러 정성을 다했다. 퇴원하던 날 그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아내가 있기 때문에 사귈 수 없다는 것. 아내는 친정아버지 간병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었고, 아내가 걱정할까봐 사고 난 얘기를 하지 않아서 문병을 못 왔다는 것. 그 남자는 생명의 은인인 아내를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것. 그녀는 원하는 것을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 이사 온 후 며칠 동안 그 남자의 동정을 살폈다. 음악학원을 하는 그 남자는 오전 8시에 집을 나섰다. 그녀는 경비실 옆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척 했다. 그 남자가 그녀를 보고 차를 세웠다. 미소를 지으며 여기엔 웬일이냐며 물었다. 그녀는 이 근처에 산다고 대답했다. 조수석에서 그 남자의 아내가 눈을 치켜뜨곤 빨리 가자고 채근했다. 그 남자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가던 길을 갔다. 가슴이 답답했다. 여태까지 남자의 여자관계에 신경 써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어떻게든 그 남자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 남자의 아내가 장애물이었다./ 승희는 40대 중반 아줌마로 변장하고 변두리 다방에서 그 사내를 만났다. 표적을 말해주고 사례금 절반을 선금으로 주고 열흘 후 일이 끝나면 나머지 절반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그녀는 프랑스 미술학회 세미나에 갔다 왔다. 그 열흘 후, 그녀는 전처럼 변장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 사내는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했다. 잔금을 건넸다. 그 사내는 표적의 남편에게 들켜 그 남자도 함께 없앴다고 덧붙였다. 승희는 망연자실했다. 다방을 나와 차를 탄 사내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 남자를 말끔히 처리했으니 약속한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랑을 쟁취하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를 고발한다. 사랑은 두 사람의 쌍방향 교감이다. 어느 일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하고 임해야 상호 낭패를 막을 수 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 사랑의 열병은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비극적 결말을 피하려면 그 전에 올바른 마음가짐을 준비해둬야 한다. 연적을 교차 살해하는 이야기는 픽션일 뿐이지만 섬뜩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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