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발행일 2021-03-17 14:39:3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낙태를 바라보는 두 시각 ~

…동생이 영상의학과 전공의로 뽑혔다. 나는 동생을 만나 합격을 축하해주었다. 내가 산부인과를 택했을 땐 고생을 사서 한다는 분위기였다. 나는 동생을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순간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쳤다./ 당신을 안 것은 지난해 11월 희진 언니가 주간하는 모임에서다. 낙태죄에 관한 칼럼 초고를 합평하는 자리다. 소파술에 의하지 않고 약물로 같은 목적을 취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의문이 있었으나 전화가 오는 통에 회의실을 나왔다. 엄마는 동생의 임신 사실을 알고 흥분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모양새다. 동생과 통화했다. 임신 9주. 정형외과 전공의 남친 자랑을 늘어놓았다.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결혼시키자는 아빠를 힐난했다. 임신중절을 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동생은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한 까닭에 생활과학대학에 들어갔었다. 안정성에 목매는 엄마에게 세뇌된 탓인지 의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나도 영화인이 되고 싶어서 그 문턱까지 갔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의대로 전향했다./ 동생은 내 칼럼에 대해 운을 뗐다. 임신중지에 대한 내 글을 읽어봤을까? 전에 느꼈던 서늘한 기운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 그 서늘함에 시달렸다. 임신이 결혼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편한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으로 당신에게 죄짓는 것 같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결국 엄마도 결혼을 받아들였다./ 대선배의 초고를 합평하는 자리였다. 임신 중에 미성년자의 임신중지를 시술했던 내용이었다. 시술한 아기와 태어날 자기 아기의 이미지가 뒤섞여 괴로웠던 일화는 고민 끝에 뺐다고 한다. 내가 반론을 제기하자 다른 후배도 비판적으로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희진 언니가 말했다.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다. 생각을 조금 미뤄 두라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동생을 보자 정동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꿈과 달리 의사가 된 현실을 후회하지 않는지 서로에게 물었다. 산부인과를 선택한 이유도 물었다. 불현듯 희진 언니가 생각났었지. 그땐 낙태죄에 대한 편 가름이 심했었다. 꾀인 건가. 결혼식을 마치고 엄마가 동생 배에 대고 인사를 하곤 나보고도 그리 해보란다. 당신에게 그렇게 첫 인사를 했다. 그 후 그 서늘함이 사라지고 칼럼이 술술 풀렸다. 임신중지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희진 언니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다음으로 미뤘다. 그녀를 따라다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를 믿고 씩씩하게 살아왔다. 다음 모임부턴 빠지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동생은 내가 낙태죄 폐지 쪽에 선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성향의 내 칼럼을 읽어봤을 수 있다. 초음파사진을 보여주면서 임신중지를 고려해봤단다. 그 사람을 붙잡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출산을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맞이하고 사랑하게 될 운명이다. 다른 세계에서도 그 사랑은 변함없을 터지만.…

낙태 논란은 답이 없다. 태아 생명을 존중하면 낙태반대로 보수고, 여성 선택권을 존중하면 낙태찬성으로 진보다. 가임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는 이해관계인이라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신은 출산의 대가로 섹스의 쾌락을 준 것인지 모른다. 쾌락만 취하고 의무를 버리는 건 역린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당신과 교감한 후 서늘함이 사라진 건 의미심장한 신호다. 희진과 결별한 일도 같은 선상에 놓인 상징적 장치다. 양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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