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105>밀본법사가 귀신을 물리치다

발행일 2021-03-15 09:40: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밀본법사가 육환장으로 귀신을 잡고, 선덕여왕의 병을 치료

선덕여왕이 나이 들어 즉위해 외세 침략과 내부적인 갈등이 증폭돼 과중한 업무로 병이 들었을 때 밀본법사가 술법으로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주 낭산의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솔밭길.


여기부터 삼국유사 제5권 신주편이다.

신주는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는데 신비한 주문이라고 해석된다.

주문은 밀교에서 행하던 세 가지 의식 중의 하나로 진언을 의미한다.

어떤 책은 다라니경도 주문의 하나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신주편에서는 밀본, 혜통, 명랑법사 등의 승려를 통해 밀교에 대한 신비스런 주문과 그 힘을 소개한다.

신라 선덕여왕대부터 시작해 진덕여왕,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까지 이어지며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 등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밀본은 삼국유사 전체를 통틀어 여기에서만 등장한다.

밀본이 법사의 이름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밀교의 본질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학자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만들어진 가공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사천왕사에서 명랑법사와 유가명승들이 주문을 외워 당나라의 50만 대군을 수장시킨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밀교의 한 부분을 삼국유사가 소개하는 신주편에서 엿보기로 한다.

경주 낭산 도리천으로 불리는 곳에 신라 27대 선덕여왕릉이 있다.


◆삼국유사: 밀본 법사가 요사한 귀신을 물리치다

선덕왕 덕만이 병에 걸려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 승려 법척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병의 치료를 맡은 지 오래 됐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의 덕행이 온 나라에 소문나 있으므로 측근 신하들이 법척을 밀본법사와 바꾸기를 왕에게 청했다.

왕이 조서를 내려 그를 궁중으로 맞아들였다.

밀본은 왕의 침실 밖에서 약사경을 읽었다. 경을 다 읽자마자 가지고 있던 육환장(고리가 여섯 개인 지팡이)이 왕의 침실 안으로 날아 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던져 거꾸러뜨리니 왕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이때에 밀본의 머리 위로 다섯 색깔의 신비로운 빛이 뻗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또 승상 김양도가 어렸을 때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김양도가 늘 보니 큰 귀신 하나가 작은 귀신을 거느리고 와서 집안의 상 위에 있는 음식들을 맛보고 먹으면서, 무당이 와서 제사 지내면 떼를 지어 모여들어 저마다 욕했다.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불리는 김유신 장군은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추증해 선도산자락에 왕릉급으로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김유신 장군은 검술이 뛰어났으며 밀본법사와도 가까운 관계였다.


양도는 귀신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고 싶었으나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부친이 법류사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승려를 청하여 경을 읽게 하자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시켜 쇠몽둥이로 승려의 머리를 쳐 땅에 넘어뜨리니 승려는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며칠 후에 사람을 보내 밀본법사를 맞아오게 했다.

그 사람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밀본법사가 우리 청을 받아들여 곧 올 것입니다”라 하자 귀신의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얼굴색이 변했다.

작은 귀신이 말하기를 “법사가 오면 이로울 것이 없으니 그를 피하는 것이 어쩌면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고 말했다. 큰 귀신은 거만을 부리며 태연하게 “무슨 해로운 일이 있겠는가”고 답했다.

조금 뒤에 사방에서 모두 쇠로 된 갑옷과 긴 창으로 무장한 대력신이 와서 귀신의 무리들을 잡아 묶어서 갔다.

그 다음에는 수 많은 천신이 둘러서서 기다렸다. 조금 후에 밀본이 도착해 경을 펼 사이도 없이 양도의 병은 즉시 나아서 말을 하고 몸도 움직일 수 있게 되니 지난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로 인해 양도는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서 한평생 게으르지 않았으니 흥륜사 법당의 주불인 미타부처상과 좌우보살을 빚어 만들었으며 아울러 법당 안에 금빛으로 벽화를 가득 그렸다.

김유신 장군묘의 12지신상 중에도 토끼와 용의 신상은 여의주를 들고 있어 이채롭다.


밀본은 일찍이 금곡사에 머물렀다.

또 김유신은 연배가 높은 거사 한 분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이때 유신공의 친척 되는 수천이 나쁜 병에 걸린 지 오래 돼 공이 거사를 보내 진찰해 보도록 했다.

마침 수천의 친구인 인혜라는 이름의 승려가 중악에서 찾아왔다가 거사를 보더니 업신여기면서 말했다.

“그대의 형상과 거동을 보니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거사가 말하기를 “나는 김유신 공의 명을 받고 부득이 왔을 뿐이외다”고 답했다.

인혜가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신통력을 보라”고 한 후 즉시 향로를 받들어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자 조금 뒤 오색구름이 그의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천화가 흩어져 떨어졌다.

거사가 말하기를 “스님의 신통력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제자도 또한 변변찮은 재주가 있으니 시험해 보고자 합니다. 스님께서는 잠깐만 제 앞에 서 계십시오”고 하니 인혜는 그의 말에 따랐다.

거사가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소리를 내자 인혜가 공중으로 한 길 높이 가량 거꾸로 떠오르더니 한참 후에야 천천히 거꾸로 내려와 머리가 땅에 박혀 말뚝을 박은 것처럼 우뚝 섰다.

옆에 사람이 밀거나 당겨도 꼼짝하지 않았다. 거사가 떠나가니 인혜는 거꾸로 박힌 채로 밤을 세웠다. 이튿날 수천이 사람을 시켜 유신공에게 알리자 유신공이 거사를 보내 그를 풀어 구해 줬다. 인혜는 다시는 재주부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밀본법사가 귀신을 물리칠 때 육환장을 사용하기도 했다. 경주동국대 본관의 김교각 지장보살이 들고 있는 육환장.


◆새로 쓰는 삼국유사: 밀본법사의 육환장

밀본법사는 신라 궁궐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깊은 계곡의 금곡사에 거주하며 일반인들의 눈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외출할 때는 늘 대나무로 만든 육환장을 들고 다녔다. 밀본법사는 앉거나 서거나 걸어다닐 때조차 늘 중얼중얼 거리며 입안에 무슨 소리를 외고 다닌다.

법사가 걸어다닐 때 그의 발을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그의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살짝 떠다닌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닫고 살생을 즐겨하지 않아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자신의 육신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려고 걸을 때도 땅을 밟지 않았던 것이다.

밀본법사는 찾아오는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거나 살아갈 방도에 대해 족집게처럼 도움을 주어 삶을 평화롭게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소문으로 험한 산길을 헤치고 금곡사를 방문하는 발길이 줄을 이었지만 밀본을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밀본이 알아차리고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륜사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경주공고 부지에 남아있는 신라시대 사찰 부재들. 김양도가 밀본법사의 도움으로 병이 나은 후부터 불교를 믿으며 흥륜사에 많은 불사를 했지만 흥륜사는 사라지고 석탑 등의 흔적만 남아 있다.


밀본은 수련을 위해 바위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도 모르게 많은 곳을 다니며 이적을 행사했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도 알게 모르게 많은 일을 하고 다녔다.

특히 일본이 바다 건너 침략해 오는 것은 밀본이 미리 예방해 당시에는 왜구들이 신라땅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했다.

밀본은 해변마을 지형에 변형을 주고 주문을 걸어 바다에서 아예 접근을 못하게 했다.

왜구들이 배를 타고 동해안 신라의 땅으로 들어올라치면 노를 젓고 저어도 가까워지지 않아 한 번도 신라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번번이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 했다.

해변 마을 산과 들에 밀본이 박아 둔 육환장이 이해하지 못할 방향으로 이곳저곳에 꽂혀 있었다.

도적을 물리치거나 나쁜 귀신을 쫓는 일에는 반드시 밀본의 육환장이 활약을 했다.

그의 손발이 직접 움직이는 일은 좀체 볼 수가 없었다.

밀본의 육환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워낙 빠르고 강한 힘을 바탕으로 움직여 아무리 힘이 좋은 장군이라 해도 그의 육환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신라시대 최초의 국가사찰로 불리는 흥륜사로 전해졌지만 발굴에서 영묘사라는 명문의 기와조각이 출토되면서 영묘사로 전해지는 흥륜사 전경.


선덕여왕을 괴롭히던 귀신은 무리를 거느린 힘이 강한 대장귀신으로 우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하여 자신의 힘을 과신한 그 대장귀신 우괴는 겁이 없었으며, 자만심에 빠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해치우고 보는 성미였다.

때문에 선덕여왕과 충신 김양도를 괴롭히며 자신들의 권역을 넓혀가던 중에 밀본법사가 왕의 부름을 받고 자신들을 잡으러 온다고 해도 대책을 세우지 않고 거만을 떨다가 법사에게 낭패를 당했다.

밀본은 우괴의 거만함을 미리 알고는 궁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리 육환장을 던져 우괴의 늑골을 후려쳐 일어서지도 못하고 꿇어앉게 했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우괴는 밀본이 도포자락을 끌며 여왕 앞에 목례로 인사를 하면서도 빈틈없이 단단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절망했다.

밀교의 진언을 통해 귀신을 물리치기도 하고 상당한 도력을 선보였던 밀본법사가 머물렀다고 전하는 경주 안강의 금곡사.


우괴는 그의 부하 귀신들을 모조리 궁궐에서 철수시켜 변방으로 달아나면서 밀본의 육환장이 또 날아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신라 쪽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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