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다녀 간 뒤 찰진 흙 텃밭에는/지렁이 꿈틀대고 상추 잎 풋풋하다/발 붉은 텃새 한 마리 내 옷깃을 흔드니//마당가 민들레가 반만 뜬 참한 눈짓/아이가 풋사과를 깨문 듯 웃는 아침/함초롬 낮은 자리서 낡은 구두 닦는 일//한때의 초록 물도 섭섭잖이 젖어들고/멀찍이 손차양에 꺾어서는 그리움/빙그레 은목서 향기 함께 맡는 저녁답

시조집 「뒷마당 생각」(두손컴, 2019)

정현숙 시인은 경남 김해 출생으로 1990년 문학세계 신인상 및 1991년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화포리에서’, ‘뒷마당 생각’ 등과 동시조집으로 ‘둠벙에 살던 물방개’가 있고, 현재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이다. 그의 시조 세계는 소박하다. 삶의 이치가 진솔하게 녹아 있어 공감을 안긴다. 성품대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행복 씨앗’이 노래하고 있는 정경도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소소한 삶을 희구한다. 평범하게 살면서 오래도록 강건하기를 소망한다. ‘행복 씨앗’이 추구하는 세계가 모든 이들의 삶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봄비가 다녀 간 뒤 찰진 흙 텃밭에는 지렁이가 꿈틀대고 상추 잎이 풋풋하다. 봄의 기운생동을 본다. 발 붉은 텃새 한 마리 옷깃을 흔드니 마당가 민들레가 반만 뜬 참한 눈짓을 하고, 아이가 풋사과를 깨문 듯 웃는 아침이 눈앞에 환히 펼쳐진다. 함초롬 낮은 자리에서 낡은 구두를 닦는 일이 이어지고, 한때의 초록 물도 섭섭잖게 젖어들면서 멀찍이 손차양에 꺾어서는 그리움이 얼비친다. 그 순간 빙그레 은목서 향기를 함께 맡는다. 평온한 저녁답이다. 이 시편을 읽는 동안 치유의 느낌을 받는다. 시 속의 살뜰한 정경이 잠자던 정서를 잔잔히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행복 씨앗이 맞다. 행복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를 진정 행복케 하는 이러한 정경을 찾아 나서는 일에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생명을 고양시키는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생명답게 하고 더불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울산 십리대밭’에서 다시금 생명의 환희를 노래한다. 오늘은 푸른 미로 강 따라 흔들린다, 라고 진술하면서 차르르 생을 짓는 십리대밭 걸어들면 표류도 속수무책인 비늘 같은 댓잎소리를 듣는다. 생명의 소생, 생명의 상승과도 같은 소리다. 이것은 때로는 뒷걸음질로 새가슴 혈을 짚어 수 만장 축전 받듯 풋마음 귀를 열고 세상과 맞닥뜨리며 풀어보는 중무장이기도 하다. 또한 다시금 피를 돌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화자는 가벼운 깃털 떨궈 미풍 따라 날아보자, 라면서 비상을 권한다. 그러면서 텃새들 지저귐에 몇 장 악보 들춰가며 합죽선 펼친 햇살로 물이 드는 양지꽃을 바라본다. ‘울산 십리대밭’은 태화강과 더불어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울산이라는 거대 산업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이다. 십리대밭을 거닐면서 이렇듯 정감어린 시편을 자아올린 것은 자연친화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태사상, 생명시학적 삶에 대한 간절한 희구가 있기에 그러하다.

이제 봄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매화, 산수유, 목련, 살구꽃이 피어나면서 봄은 약동하고 있다. 정말 행복 씨앗을 뿌릴 때가 왔다. 십리대밭이 더욱 푸르게 술렁일 때가 왔다. 겨울옷을 정리하고 화사한 봄옷을 준비할 때다. 봄은 우리에게 수 만장, 수십만 장 축전과도 같은 향기로운 꽃을 한아름 선물한다. 이 어찌 가슴 뛸 일이 아닌가. 천지에 만화방창하는 봄이 왔으니 덩실덩실 춤 출 일이 아닌가. 그 어떤 힘이 봄의 환희를 가로막을 것인가? 생명의 잔치에 흠집을 낼 텐가? 이 봄에 우리는 진정한 회복을 위해 용맹정진 해야 할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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