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포항 보경사 적광전

발행일 2021-03-21 17: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포항 보경사 적광전

보경사 경내의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적광전. 그 앞에 오층석탑이 서 있고 햇살이 비친다. 지명법사가 이 자리에 팔면경을 묻고 금당을 세웠다는 창건설화가 있다.
적광전 앞에 앉아 있는 작은 사자상은 귀한 것을 지킨다는 표시로 존재한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있는 사자상(상)과 왼쪽 사자상(하)
광전 정면 법당문 아래 고막이돌이 놓여 있다. 비취색을 띤 이 옥돌은 통일신라의 기법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물 적광전은 특이하게 건물 옆면에도 화려한 색상의 단청 등이 장식돼 있다.
적광전의 주불인 ‘소조비로자나삼존불 좌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찬란하다. 문수보살(우측)과 보현보살(좌측)이 시립해 있다.
적광전의 후불탱화인 보물 제1996호 ‘비로자나불도’는 대형 삼베 위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강렬한 대비의 효과를 표현한 선묘불화이다.
적광전의 입구 문고리에 환한 봄 햇살이 내려와 따뜻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몸과 마음을 지닌 세상의 모든 존재는 살아가면서 기쁨과 슬픔을 겪는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생활의 폭을 줄이고 있는 나날이다. 소중한 시간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 많은 사람 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종교에 의지한다. 때로는 햇살 따스한 날, 조용한 절집을 찾아 명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절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먼저 여러 전각 들을 둘러 본다. 사찰 전각의 명칭은 그 속에 안치된 불상에 따라 다르다. 대웅전은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기본 법당이다.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는 전각으로 번뇌를 끊고 고요히 빛나는 마음이라는 적광(寂光)의 의미를 가진다. 혹은 앞에 대자를 붙여 대적광전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적광전 중, 학계의 주목을 받는 전각이 경상북도 포항 보경사에 있다. 고요히 빛나는 공간, 그 적광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보경사 오층석탑, 적광전의 가치를 입증

산사의 신선함과 신비로움을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이른 아침 첫 햇살 비칠 때 절집 입구 솔숲 속에 서 있어 볼 일이다. 경험해 본 적 없는 템플스테이를 휴식형으로 신청하고 보경사 경내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상큼한 찬 공기를 호흡하며 인적 없는 일주문 앞으로 걸어 나가 카메라를 들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보경사의 현존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법당인 보물 제1868호 적광전이 보인다. 예상대로 햇살도 건물을 비스듬하게 어루만지듯 비춰 준다. 좋은 풍경사진은 이른 아침 해 뜰 무렵에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빛은 법당 앞마당에 서 있는 5층 석탑 탑신의 상단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며 비치기 시작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보경사 오층석탑은 적광전의 가치를 입증하는 역할도 한다. ‘보경사 금당탑기’라는 기록에는 ‘도인, 각인, 문원이 고려 현종 14년(1023)3월 이 탑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오랫동안 일명 금당탑으로 불려왔다. 금당은 절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신 건물을 말한다. 전각 앞에 탑이 서 있으니 적광전은 금당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경사 창건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봐야 한다. 신라 진평왕 25년(602)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한다. 스님은 한 도인으로부터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팔면보경을 전수받고 귀국했었다. 내연산 아래 못을 메워 팔면거울을 그 속에 묻고 금당을 세운 후 절 이름에 거울 경(鏡)자가 들어간 보경사(寶鏡寺)를 창건했다는 설화이다. 이후 단 한 번도 명칭은 변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신도들은 지금도 그 거울을 묻었던 금당이 적광전이라 믿고 있다.

탑과 전각 사이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니 작은 사자상의 신방목에도 햇살이 비치고 있다. 하루 중 짧은 이 시간만이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광선이 내려온다. 심하게 마모됐어도 버티고 앉은 작은 사자의 자태를 보면 전각을 지키는 역할을 묵묵히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신방목이란 옛 건축물의 대문이나 출입문 문설주의 하단에 받치듯이 끼워놓은 짧은 각목을 말한다. 불교 조형물에서 사자상은 인도 아잔타석굴이나 중국 운강석굴 등지의 불상 대좌에 일찍부터 등장하며 무엇보다 귀한 것을 지킨다는 표시로 존재한다. 두 마리 사자의 통통한 몸체와 다리, 처진 귀, 길게 다문 입은 아직 선명해 보이지만 본래의 근엄함과 사나움은 세월에 닳아 부드러워졌다. 이제는 순하고 귀여운 모습의 강아지 형상으로 느껴진다. 따스한 햇살이 이들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왼쪽 사자 목에는 굵은 방울이 달린 목걸이도 선명하게 보인다. 두 마리 모두 툭 불거지게 뜬눈으로 앞다리를 쭉 펴고 서서 오늘도 내일도 적광전을 지킬 것이다. 참배객이 신발을 벗고 법당 문턱을 넘는 순간 신속하게 발밑까지 조사하는 치밀함을 보여 줄 것만 같다.

두 마리의 사자상 사이에는 옥으로 만든 고막이돌이 놓여 있다. 천년이 넘도록 수 많은 사람들이 밟아 반들반들 닳았지만 분명 비취색을 띄고 있다. 신라인들은 물론 오늘도 사람들은 옥색 고막이돌을 밟고 적광전의 문지방을 넘는다. 비바람과 햇빛 속에 처연하게 몸을 누이고 있다. 보름달 환한 밤에는 옆에 있는 두 마리 사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오늘도 두 마리의 사자상은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문화재청은 적광전의 기둥 받침돌인 초석과 기둥 하부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인 고막이 등이 전형적 통일신라의 건축 기법을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건물 사방 모서리에 도드라지게 만든 주춧돌도 옥돌로 짐작된다. 적광전은 신라시대 옛 부재를 일부 사용해 다시 지은 건물인 셈이다. 창건 후 1214년(고려 고종 원년)에 원진국사가 중창하고, 1677년(조선 숙종 3년)에 한 번 더 중창한 전각으로 기록돼 있다. 통일신라시기와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법당 아래 놓여 있는 돌들은 깎이고 파이고 잘린 채 지금의 처지를 묵묵히 견디며 적광전을 받치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은은한 비취빛 옥돌로 사방을 떠받친 금당 즉 신라가람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적광전을 외형으로 보면 주위의 전각들에 비해 작고 아담하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일반적인 건축형식에서 다포계의 측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독특하게 건물 옆면에도 화려한 색상의 단청 등이 장식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니 환한 햇살이 내려와 따뜻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법당문은 일반 한옥과 달리 단순히 출입의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가진다.

합장하고 내부를 둘러보니 먼저 이 전각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찬란하다. 부처의 몸을 표현할 때 지혜와 자비 광명의 빛인 황금색이 사용됐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포항 보경사 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이다. 흙으로 성형돼 여러 겹의 천위에 도금된 삼존 불상이다. 주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서 있는 비로자나삼존상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적광전에도 예외 없이 비로자나불도가 장엄돼 있다. 2018년8월 보물제1996호로 지정된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불화로 알려져 있다. 1742년(영조18) 경북지역의 불화승 세 사람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것이라는 명문이 아랫 쪽 가운데에 적혀 있다. 높이 3m에 가까운 대형삼베 바탕에 먼저 붉은 물감을 칠한 뒤 비로자나불을 중앙에 배치하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상 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불화이다. 불교가 민중 속으로 깊이 확산된 이후에는 이처럼 삼베에 선묘 형태로 그리는 색다른 조선의 민중불화가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강렬한 색 대비의 효과를 표현하고 있다. 보살상의 유연한 자세와 사천왕상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은 격조 있고 기품 있는 선묘불화의 세계를 보여 준다. 법당의 규모는 크지 않은 적광전이지만 불상 앞에 서 있어 보면 장엄한 불법의 세계가 내부 공간에 가득함을 느낀다.

밖으로 나오니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 사방은 봄빛으로 가득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보경사는 내연산의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완만한 평지에 입지하고 있다. 계곡물이 둥글게 감싸고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 바람도 막을 수 있는 곳이다. 보경사 부지 내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적광전은 여러 전각들에 의해 포근하게 둘러싸여 있다. 그 뒤쪽으로 높은 석단 위에 세워진 대웅전과는 달리 나지막한 위치에 있다. 평지와 같은 높이에 세워져 겸손해 보인다. 그러나 창건 당시 연못을 메우고 팔면경을 아래에 묻었으니 그 위의 공간은 성스러운 곳이다. 당시 건축 장인은 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적광의 공간을 이루어 낸 것이다. 어디에나 골고루 내리는 봄 햇살이 적광전 앞마당에는 더 밝고 따뜻하게 쏟아지는 듯하다. 주지 철산스님과 차담의 시간을 가진다. 생사에서 벗어나라는 뜻으로 “누구나 죽는 데는 이상 없습니데이”라는 한 마디는 화두가 돼 따라온다.

이제 절집을 떠나 솔숲 사잇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다르게 그 모습을 나타낸다. 힘들고 어려운 이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는 죽을 때 죽더라도 또 새로운 원을 세워야 한다. 다시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작은 개울에 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얼어붙은 내연산 계곡 폭포도 녹아내리는가 보다. 봄은 화들짝 온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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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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