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를 1년 앞두고 대선 시계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하며 대권 레이스가 본격 점화되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맹비난하며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명확한 표명은 아니지만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사퇴는 하루 전 3일 대구고·지검 방문에서 감지됐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대구 방문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대구 검찰청사 앞에는 각종 피켓과 함께 20여 개의 화환이 늘어섰다. ‘우리나라의 미래 윤석열’, ‘끝까지 윤석열’, ‘윤석열 총장 만세’, ‘법치의 수호신’, ‘윤석열 포청천’ 등의 격려 문구가 등장했다. '윤석열' 연호도 이어졌다.

---대구 방문시 환대, 기댈 곳 없는 민심 반영

이날 환대는 현 정부 들어 기댈 곳 하나 없는 대구·경북민들의 마음이 표출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어쩌면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예상 이상의 지지가 사퇴를 앞당기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대구를 사임 전 방문해 자신의 갈 길을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대구 방문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 저지 실패로 좌절에 빠진 대구·경북 정서와 맞물려 분위기가 고조됐다. 가덕도 저지 과정에서 지역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보신주의를 넘어 직무유기에 가까운 처신이었다.

이제 지역의 미래가 걸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앞날은 현 정권과 여당의 자비(慈悲)를 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편가르기의 명수인 이 정권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있다. 대구·경북이 차선으로 선택한 통합신공항특별법 제정을 외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안다. 부산지역 지원에 생색을 내기 위해서다.

가덕도특별법 사태는 대구·경북에 굴욕을 강요했다. 자존감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혔다. 자구책이 절실하다. 지역 정치구도 개편, 지역외면 정권 심판, 지역민 자존감 회복 등이 복잡하게 얽힌 고차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윤 전 총장이 정치활동을 한다면 주요 지지기반은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이 될 것이다. 대구 고·지검 방문 때 권영진 대구시장의 이례적 현장 영접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주자 지지율은 한때 선두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소강상태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1~3일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9%로 나타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27%),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12%)에 이어 3위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2위, 부산·울산·경남과 대전·세종·충청에서는 3위다.

그러나 이 조사는 그가 사퇴하기 직전 실시된 조사여서 구체적 정치 행보에 나설 경우 지지율은 상승할 가능성이 많다.

역대 대선은 정치적 성향과 함께 출신 지역이 변수로 작용하곤 했다. 그는 서울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는 충남 공주가 고향이다. 이러한 점이 ‘충청 대망론’에 편승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무기력 떨치는 새 돌파구 될 수 있을까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그가 현 정권 초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적폐 수사를 지휘했다는 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보수진영 대권 주자로 나섰을 때 선뜻 손을 들어주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의 대응이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에게는 우선 코앞에 닥친 4·7 재보선이 향후 활동의 변수다. 현 상태에서는 야권이 이기든, 지든 나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야권이 이기면 대선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진영 개편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지면 리더십 교체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두가지 경우 모두 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정계 진출이 무기력에 빠진 대구·경북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역에는 지금 부당한 결정에 맞서 싸워나갈 강단있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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