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진원지에서 방역 모범도시로 탈바꿈||시민의식과 희생으로 버텨…간헐적 감염은 여전

지난해 2월29일 대구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719명에 달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코로나에 감염되고도 병상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도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정치권에선 ‘대구 봉쇄’가 공공연히 거론됐다.

그 후로 1년, 여전히 간헐적 감염 사례는 이어지고 있지만 대구는 코로나19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있다.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라는 주홍글씨를 이겨내고 방역 모범도시로 거듭나며 세계를 놀라게 한 D-방역의 뒷면에는 수많은 시민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다.



▲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동안 바꿔 놓은 대구 도심 속 일상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동안 바꿔 놓은 대구 도심 속 일상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산산조각난 평화…그 후로 1년

지난해 2월18일 평화롭던 대구의 일상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수성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은 한 60대 여성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일명 ‘31번 확진자’로 불린 이 여성이 증상을 앓으면서도 종교시설에서 대면 예배를 드린 것이 알려지면서 방역당국은 긴장했다. 걱정은 현실로 바뀌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확진자는 1천 명으로 늘어났고, 한 달 후에는 6천144명이 됐다.

폭증하는 환자에 의료체계는 마비됐다. 대구 종합병원 4곳은 모두 폐쇄됐고, 모자란 병상 탓에 확진자는 물론 중증 환자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수도권 병원 문 앞에는 ‘대구 경북 출신·방문자 출입금지’ 문구가 붙었다. 서울 자녀 집에 왔다가 확진된 대구 출신 감염자 뉴스에는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여러 지역감정과 정치적 쟁투의 말이 안 그래도 힘든 대구시민의 마음에 또 한 번 깊은 생채기를 냈다.

위기의 순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전국의 뜻있는 의료진들은 대구로 몰려들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눈물겨운 호소문은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최대 719명에 달했던 하루 확진자 수는 52일 만인 지난해 4월10일 ‘0’명을 기록했다. 이후 안정된 추이는 전국적으로 광화문발 확산으로 홍역을 치르던 지난해 11월까지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에서 모범 방역도시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겨울철 대유행은 다시 시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종교시설과 요양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졌고, 지난해 12월30일에는 신천지 집단감염 이후 최다인 5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최근 확산세가 한풀 꺾였다.

◆시민이 백신이었다…시민의 희생으로 버틴 1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구시민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긴 터널의 끝에서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면서 쓰디쓴 고통을 감내했다.

지난해 3월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대구시민은 외출은 물론 생업까지 포기해가면서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했다.

지난해 2~3월 대구에서 대유행이 시작됐을 당시 대중교통 이용률은 70~80% 이상 감소했고, 다중이용시설은 88%나 자진 휴업을 했다.

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코로나 피해를 보고 있는 ‘소상공인 도와주기 릴레이’가 펼쳐졌다.

한때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겪는 상황에서 시민은 의료진과 소방인력에 마스크를 양보했다.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대구 곳곳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키다리 아저씨’들이 등장했다.

전례 없는 위기의 극복은 대구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희생정신으로 비로소 가능했다.

하지만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1년째 지속된 거리두기에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시민의 고통과 희생으로 점철된 D-방역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