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잔잔한 날, 낯 뜨거운 소리/ 남근 같은 뿌레카/ 딱딱한 길바닥 바윗돌까지 뚫어가는/ 저 요상한 짓시늉/ 끙끙 신음하며 뭐든지 품어주는/ 땅 땅 땅/ 너는 아직도 한창이구나

「대구문학대표작선집Ⅰ」 (대구문인협회, 2013)

음양사상은 동양철학의 기저에 흐르는 사고의 흐름이다. 우주만물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뤄진다는 사고의 틀이다. 이는 복잡한 자연현상을 음과 양의 운동으로 파악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추자의 음양가에 한정된 사상체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념이다. 흔히 음양을 오행으로 확장해 음양오행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무속신앙의 주요 분석도구로 원용되기도 한다. 동양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성리학도 유학과 음양사상을 결합한 철학체계이고 실용학문인 한의학도 음양사상을 기본적인 틀로 활용한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상호의존적인 존재로서 상생하는 관계이다. 음의 존재는 양의 존재조건이고 양의 존재는 음의 존재조건이다. 음과 양은 시종일관 고정된 개념은 아니다. 즉, 서로 정지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갖는다. 음양의 변화가 일정단계에 도달하면 음이 양이 되기도 하고 양이 음이 되기도 한다. 음양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주역이 항상 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 전혀 생뚱맞지 않은 이유이다.

하늘과 땅, 해와 달, 불과 물, 수컷과 암컷 등에서 양과 음의 발현 방식을 잘 볼 수 있다. 홀수와 짝수, 덧셈과 뺄셈, 적분과 미분 등에서 보듯이 수학에도 음양사상을 많이 응용하고 있다. 과학의 성과 가운데도 음양사상의 발현 현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양극과 음극, 양자와 전자는 물론 유카와 히데키의 중간자 개념도 이백의 시와 장자의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음양사상의 성과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음양사상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음양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가히 일상에 널려있다고 하더라도 견강부회라 비틀 수 없을 것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상이 음양의 조화로 존재한다. 볼트와 너트, 수나사와 암나사, 열쇠와 자물쇠, 수기와와 암기와 등 수많은 발명품들이 볼록한 형태(양)와 오목한 형태(음)의 결합을 응용한 물건이다. 못 하나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주변에서 음양을 응용하지 않는 물건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생물의 번식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수컷과 암컷의 교접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이 음양사상의 진원지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이 가장 적나라한 음양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굴삭기의 원리도 음양사상에 닿아있다. 평평한 땅은 음이다. 땅을 굴착하기 위해선 강력한 양의 성질이 필요하다. 강력한 양의 성질을 가진 것은 남자의 양물이다. 남근을 닮은 강력한 뿌레카를 장착한 중장비가 굴삭기다. 굴삭기는 모양뿐만 아니라 작업하는 방식도 인간의 성행위를 빼닮았다. 굴착하는 뿌레카의 소리도 낯 뜨겁다. 땅을 뚫는 공구의 짓시늉을 지켜보는 일이 민망할 정도로 요상하다. 그래도 대범한 대지는 끙끙거리면서도 뿌레카를 받아들인다. 땅에다 땅 땅 땅 힘차게 박는 뿌레카가 부끄럽지만 한편 부럽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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