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연숙 ‘빛과 바람이 통하는 갓’

발행일 2020-11-10 16:48: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연숙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하필 장마철에 그 먼 곳을 간다고 약속을 잡았을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앞에 두고 새벽 창가에 섰다. 심상찮은 분위기다.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기에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번뇌의 물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훌훌 털고 나서 보니 어느새 팔공산 입구다. 마음이 걱정을 만들었다. 1천365개 계단을 알리는 푯말 앞에 섰다. 일 년이라는 숫자에 눈길이 머문다. 삼백육십오일 지켜주고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의미로 만든 계단일까. 그도 아니면 매일 고민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걸까. 계단을 다 오르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니 걷는 수고쯤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으리라.

정오에 가까워진 햇볕은 따갑고 깎아지른 듯 펼쳐진 계단은 아슬아슬하다. 이까짓 계단이 아니다. 마스크 속 얼굴이 땀으로 따끔따끔하다. 평일에 찾은 팔공산은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날 뿐 한산하다. 간절한 무엇인가가 그들의 발길을 팔공산으로 향하게 했으리라. 스무 계단쯤 올랐을 뿐인데 벌써 다리가 후들거린다. 고뇌의 부피만큼 발걸음도 무거운 것인가 보다. 문득 내려오는 노파의 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장 난 경운기처럼 덜덜거리는 다리가 안쓰럽다. 아차 하면 툭 부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짓누르던 괴로움을 다 벗어 던지고 온 탓일까. 훌훌 날아가 버린 고뇌를 다시 붙잡아 오면 다리의 흔들림이 멈출지. 새벽부터 나섰을 노파의 푸석한 머릿결이 바람에 흩어진다.

노파를 뒤로하고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부처님 앞에 섰다. 어떤 걸 내려놓고 어떤 걸 가져가야 하나. 딱 한 가지만이라니 욕심을 부릴 수 없다. 팔뚝만 한 큰 초에 불을 붙였다. 가장 큰 초다. 욕심인지 간절함인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초가 빨갛게 타오른다. 이유 없이 가슴이 뻐근하다. 이보다 뜨거운 불꽃이 있을까.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약사여래불로 불린다. 약사여래불은 불교에서 중생들의 병을 고쳐준다는 부처다. 병을 고친다는 의미 때문인지 대부분 약사여래불은 약 합이나 작은 병을 들고 있다. 이곳 부처님 또한 왼손에 작은 약 합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몇 해를 수십 번 다녀갔음에도 어리석음 때문인지 약 합을 보지 못했다. 아마 다른 불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약사여래불로 불리는 이유는 사각의 돌 갓에 있을 것 같다. 갓은 바람을 막아주고, 따가운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사람들의 괴로움과 간절함을 돌 갓이 막아 줄 것만 같은 이유다. 갓 위에 중생들의 소원이 켜켜이 쌓이리라. 내가 가진 고민과 간절함의 무게가 깃털 같았으면 한다.

그저 돌의 수수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투어야 할 이유가 있었음일까. 꽉 다문 입술은 근엄하고 지그시 감은 눈이 묵직하다. 한 걸음 떨어져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쓰고 온 모자를 벗어 가지런히 놓았다. 두 손을 모으고 계단을 오르는 동안 절반은 이룬 것 같은 소원을 떠올린다.

남편은 납품하고 받지 못하는 돈 때문에 힘들다. 뜻하지 않은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니 이쪽도 저쪽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소원만 이룰 수 있다니 저쪽을 위해 합장을 했다. 저쪽이 잘 돼야 남편이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절을 하는데 문득 잡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위한 기도가 먼저일 것만 같은 것이다. 결국, 소원은 두 개가 되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다 보니 짓누르던 것이 쑥 내려간다. 이만하면 되었다, 혹은 다 알고 있다, 염려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손길이 닿은 듯 마음이 편안하다. 갓에 소원이 실린 것일까.

‘갓’ 하면 조선 시대 오만한 몸짓과 갈지자걸음의 양반을 떠올린다. 혼례를 치른 남성들은 상투를 틀고 모기장 같은 반투명 갓을 썼다. 갓은 권위기도 했다. 목울대에 힘을 주고 ‘이리 오너라’ 외치던 무소불위였다. 현대에 들어 외국인들이 이 갓을 보고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신기한 모자’라는 표현을 했다. 신선한 표현이다. 힘으로 누군가를 꾹꾹 누르던 권위가 아니라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는 모자. 갓바위의 갓이 그러하다. 많고 많은 고뇌를 바람에 훌훌 날려 보내고 나면 돌 갓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음이다. 약 합 대신 왜 돌 갓이어야 했는지 알 것 같다.

일상은 늘 불안, 초조, 근심 걱정이 되풀이되어 일어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일상의 물건에만 쓰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심(心)이 된다. 고민과 욕심, 두려움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근심이 사라지지만 마음은 알기조차 어렵다. 갓바위의 갓은 마음을 잡아두지 말라고 한다. 초조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겠는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소원성취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하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한 계단 내려가는 순간 다시 불안함이 찾아든다. 마음은 술 취한 원숭이와 같다더니 왔다 갔다 종잡을 수 없다. 바람이 통하라고 머리에 쓴 모자를 느슨하게 풀었다. 바람은 언제쯤 불어줄까.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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