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우리는 전례 없는 전 방위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촛불정권이 들어선지 4년 차,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 경쟁과 실험적인 어설픈 정책의 실패로 인해 국민은 두 진영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하고 그 와중에 경제는 파탄날 지경이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창궐하는 바람에 서민의 삶은 무너지고 기초적 생활터전마저 위협받고 있다. 포퓰리즘 정책과 임기응변적 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자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진 상황이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역대 급 장마가 나라 곳곳을 유린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우울한 나날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믿고 살길을 찾아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심판의 날이 떠오르고 막연한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원초적 죄과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미리 대비하면 환난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재난을 당하는 것이 또 인간이다. 재난은 취약한 부분을 용케 골라서 공략한다. 물난리에 수해를 당한 부분이 취약한 급소라는 말이다. 수해를 당했다고 넋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자연재해가 적시한 약점을 보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재난이 찾아온다. 노아의 방주를 건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섬진강이 범람해 그 인근지역에 큰 피해를 준 모양이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원시적 재난이다. 따라서 그 원인과 처방도 새롭지 않다. 강을 지속적으로 준설하고 제방을 튼튼하게 쌓는 일이 시급하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 금상첨화다. 이는 치산치수의 기본적 내용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방법론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개별적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응용하는 정도다.

4대강 사업은 치수의 구체적 사례일 뿐 특별한 게 없다. 이는 정략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치수사업이다. 강에 보를 쌓아 유속을 떨어뜨리고 퇴적물을 특정 지역에 집중시킴으로써 준설을 용이하게 하고 제방을 튼튼하게 보강한 재난대책에 불과하다. 보에 가둔 강물을 레저시설과 저수지 및 수력발전소 등 다용도로 활용하고 강둑은 공원이나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용하는 등 부수적 성과도 결코 작지 않다. 폭우피해와 관련해 치수시설인 4대강 보의 영향과 효과성을 다시 조사·평가한다는 뉴스에 정말 어안이 벙벙해진다. 묵묵히 강물을 담고 있는 보도 지난 정권과 함께 적폐로 몰아 철거돼야 한다는 발상은 이념도 정책도 아니고 밴댕이 소갈머리일 뿐이다.

산사태 경보·주의보가 전국적으로 발령됐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하는 나라에서 전근대적인 자연재해가 천여 건이나 발생했다. 나무가 많으면 나무뿌리가 흙을 잡아주어서 산사태를 막아준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것이 산사태의 한 원인으로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론으로 여겨진다. 경제성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태양광패널과 산사태의 연관성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양광발전을 산사태의 주범으로 덮어씌울 수는 없지만 산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게다가 울창한 산림을 훼손하고 수려한 경관을 해치는 태양광발전이 친환경·재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조부모님 산소 뒤편의 산림을 훼손하고 들어선 태양광패널을 보노라면 울화가 치솟아 욕설이 나온다. 어쨌든 태양광과 탈원전을 재고하게 하는 산사태다.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다양한 도전이 있어왔다. 자연재해와 전쟁, 역병과 폭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들을 극복하고 꾸준히 번성해왔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를 두고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했다. 홍수와 한발에 치산치수로 맞서서 살아남았고, 역병이 창궐하면 백신을 개발하였다. 부국강병을 통해 힘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냈으며 가렴주구와 폭정이 행해지면 정권을 뒤집어엎음으로써 정치를 선진화시켰다.

폭정, 역병과 자연재해까지 겹쳐진 작금의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오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돈독하게 먹고 대응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바 없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과 문명은 번성했지만, 그렇지 않은 문명은 사라졌다. 도전이 없는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졌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 방위 도전에 대해 강력한 응전만이 살 길이다. 도전은 살아남은 자의 축복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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