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세상

발행일 2020-07-19 14:31:5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비가 내린 텃밭에는 감자가 파랗게 드러나 뒹굴고 있다. 적당한 때에 흙을 끌어 올려 뿌리를 묻어줘야 했지만, 그에게 눈길 줄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저 나름의 열매를 튼실하게 맺고는 보란 듯이 드러내 자랑하고 있다. 하지 감자가 맛나다는 이야기를 들어 거둬들여야지 생각만 하다가 그만 그 시기도 지나버렸다. 감자 줄기를 들고 지긋이 힘을 주니 줄줄이 달려 나온다. 소리도 없이 순순히 엮인 채 달려 나오는 감자를 보면서 가슴이 왠지 뭉클해 온다. 둘러보니 곳곳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많다. 지인이 선물로 가져다 준 복 분자는 그동안 잡초인 줄 알고 해마다 줄기를 꺾어 정리해 버리곤 했다. 올해는 그런 방해를 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재빨리 검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탐스럽게 열린 복 분자 송이를 보면서 왠지 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저리도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달고 자랑을 해댈 복 분자를 잡초인 줄 알고 꺾어 내동댕이치는 텃밭 주인을 만났으니 그동안 얼마나 서운했을까.

허둥지둥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 벌써 한해의 반이 훌쩍 지났다.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들은 것이 1월19일이었다. 그동안 하나둘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동선이 공개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실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었다. 행여 불똥이라도 튈까 봐 주변을 살펴보는 정도였었다. 하지만 2월18일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나서부터는 그야말로 집채만 한 홍수에 마구 떠밀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허겁지겁 하루를 살았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보느라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다 이젠 조금 뜸하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은 흘러 하반기로 접어들고 삼복더위가 지나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휴가를 어디로 갈까 한창 머리 맞댈 시기인데 지금은 그런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사치인 듯한 마음이다. 휴가를 포기하고 그냥 하루하루 버티겠다는 휴포자(휴가 포기자)가 생겨난다고 한다. 해외로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국내에 있는 친척한테라도 잠시나마 들러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도 행여나 그중에서 확진자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망설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식사 자리였지만 확진자로 동선이 공개되고 또 역학조사에서 그곳에 들렀다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뉴스를 보면 더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면 좋지 않겠는가.

담장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내다보니 이웃집 마당 잔디 위에 커다란 수영장이 만들어져있다. 고무 튜브로 된 간이 수영장에 바람을 잔뜩 넣으니 그야말로 멋진 옥외수영장이 돼 있었다. 아이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이리저리 헤엄치고 장난을 쳐대며 깔깔거린다. 그들의 웃음이 햇살 가득한 하늘, 소나무 숲 사이로 멀리 퍼져가고 있다. 해외로 갈 것도 없이 또 바다를 찾아 밀리는 도로를 달리는 대신 집에서 식구들끼리 저렇게 마음 편히 안전하게 쉬는 것도 참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 뉴스에는 ‘가잼비 갑’이라는 브랜드들이 눈길을 끈다. 가격보다는 재미(가잼비)를 중시해 출시한 것들이다. 간 기능 개선제 약물인 ‘우루사’와 남성복 전문 브랜드인 ‘지이크’가 뭉쳐서 우루사 곰이 그려진 슬리퍼, 양말, 티셔츠 등을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제품을 구매하면 ‘실내복’이라 적힌 커다란 약봉지에 상품을 담아 준다고 하니 그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예전 같았으면 우루사 곰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나가면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으리라. 심지어는 관종(관심 종자)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 않았으랴 싶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흥미를 많이 끄는가 보다. SNS에서는 ‘이것 입고서 나의 피로가 확 날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받은 선물 중에서 최고’라는 인증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와 더불어 세상은 끝없이 변해갈 것 같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신세계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협업을 잘해야 신선하다고 주목받고 있는 달라져도 많이 달라진 세상이다. 젊은이들은 세상에 없던 이런 것들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받아들인다고 하니 코로나가 가져온 뉴노멀에서 잘 적응해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서도 어떻게든 재미있는 세상이 되도록 늘 새로운 눈으로 즐겨볼 거리를 잘 찾아봐야 하리라.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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