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듯 써내려간 한 줄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 출간한 스님

발행일 2020-06-18 17:03:3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팔공산 거조사 주지 태관스님, 첫 시집 선보여

영천시 청통면 거조사 주지 태관스님이 첫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팔공산 거조사 주지 태관스님의 첫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이 출간 됐다.
일행일수.

수행하는 마음으로 쓰는 한 줄의 시 ‘일행일수(一行一修)’.

매일같이 수행하듯 쓰는 한 편의 시 ‘일행일수(日行日修)’.

‘게으르지 않고 꾸준하게 정진한다’는 의미에서 수행이나 창작은 닮은 점이 참 많다. ‘한 줄 시’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스님 시인을 만나러 산사를 찾았다.

팔공산 자락 천년고찰 ‘거조사’에서 만난 태관스님은 시를 쓴다기보다는 한 줄 시를 연마하고 있다. 세속 나이로 환갑인데 문단에 등단해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는 그에게서 첫 번째 시집인 한 줄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도서출판 서정시학)’을 세상에 낸 사연을 들었다.

“내게 시를 쓰는 일은 곧 부처로 가는 길”이라는 스님은 “매일 밥 먹듯이 한 줄의 시를 쓰고, 이 습관이 수행의 일과”라고 소개했다.

수행처럼 시를 쓴다는 스님은 처음부터 한 줄 시를 구상한 것은 아니다. 긴 문장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제목과 본문을 단 한 줄로 축약해 ‘한 줄짜리 시’를 완성한다. 매일 수행하듯 쓰자는 의미에서 이름도 ‘일행일수’라 부른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은 한 줄짜리 시 86편이 수록돼 있다. ‘각시 붓꽃’, ‘겨울 낮잠’, ‘바다가 마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추워야 피는 꽃이 있다’, ‘같고 같다’, ‘헐’ 등 수록된 시 전부가 한 줄이다. 제목도 한 줄, 시도 한 줄이다.

시집 한 권이 모두 한 줄 시로 꾸며진 것에 호기심을 갖자 “이 시를 읽고 누구든 시를 만만하게 봤으면 좋겠다.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접근해 한 줄로 시작한 글이 두 줄이 되고, 그러다 세 줄, 또 열 줄이 됐다가 다시 한 줄이 되고, 그러다보면 누구나 시를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누구나 쉽게 한 줄의 시쯤은 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내가 먼저 포문을 연 것 뿐”이라고 했다.

2년 전 등단을 계기로 본격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스님이 하는 말은 장황할 필요가 없다. 복잡한 시대에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가 뭐있나 생각해서 한 줄의 시를 써 보기로 했다”며 “솔직히 문단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수록된 시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시를 꼽아달라는 짓궃은 부탁에 서시 ‘등짐 지고 눈썹 위를 걷는 사내’를 꼽았다. ‘수행자는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항상 자신을 살피고 모든 유혹으로부터 성문을 굳게 지켜야 한다.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코앞이다’는 해제가 붙은 시다. 수행자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공감할 내용이 짧은 한 마디에 함축된 경구 같은 시다.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은 각각의 시 마다 해제를 따로 붙였다. 독자들이 한 줄 짜리 시를 어렵게 여길 수 있어 어떤 생각으로 이 시를 쓰게 됐는가를 안내하는 길잡이로 각각의 시에 해제를 달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관스님의 ‘일행일수’는 영감이 풍부하다. 수록된 시 ‘파뿌리가’는 제목에 문장의 주어만 툭 던져놓고 어떤 목적어와 서술어가 들어올 지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파뿌리를 다듬고 있네’라는 한 줄의 본문은 어머니의 고된 삶을 회상하는 시인의 심정이 간절하게 압축돼 있다. 너무나 무심하게 압축돼서 그것이 간결한지 모를 정도다. 따로 적어 둔 해제를 보고서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늙은 어미는 쉼이 없다. 한 줌 뙤약볕도 아깝다. 윤기는 없고 헝클어진 머릿결만 파뿌리처럼 하얗다.’

‘파뿌리’. 함부로 헝클어진 백발이 곧 어머니의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삶은 ‘윤기 없고 헝클어진’ 파뿌리와 동일시된다. ‘파뿌리가 파뿌리를 다듬고 있다’는 불완전한 문장이지만 ‘일행일수’의 양식에서는 가능한 시적 표현이다.

시를 짓는 일이 수행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스님은 “한 줄 시는 감정이 과잉돼도, 시장판처럼 잡돼도 안된다”면서 “간결하고 단출하며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를 압축한 ‘압골미’가 뛰어나야 한다”고 했다. 또 “압골미는 생각의 구조와 뼈대만 추리는 것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는 힘, 그것이 곧 수행”이라고 덧붙였다.

시를 쓰는 것도 넒은 의미에서 포교활동이라는 스님 시인은 “내년 봄쯤에 시집 하나를 더 낼 생각인데 그때도 한 줄짜리 시집을 낼 요량”이라고 귀띔했다.

1974년에 입산해 팔공산 거조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태관스님의 첫 시집 ‘흰 눈 속의 붉은 동백’(도서출판 서정시학)은 지난달 초판이 발간 됐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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