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에 각인된 흔적의 사건을 재전유하는 제의적 진혼곡

▲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도구로 사용되다 효용성을 상실하고 버려진 잔해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가 김결수의 작품전이 칠곡군 가산면에 자리한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린다.
▲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도구로 사용되다 효용성을 상실하고 버려진 잔해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가 김결수의 작품전이 칠곡군 가산면에 자리한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린다.
“자주 다니던 도로 옆 포장마차가 어느 날 폭격이라도 맞은 듯 폭삭 내려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지요. 가끔씩 들러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포장마차였는데…. 잔해들 속에서 도마 하나가 눈에 박혔어요. 오랜 세월동안 양쪽을 번갈아 사용한 나무도마였는데 가운데가 움푹 패여 구멍이 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긴 시간동안 도마 앞에서 칼질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하지도 않을 도마를 새것으로 바꾸지도 않고 툭 치면 부서질 것 같던데….”

어느 날 새벽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 위 포장마차를 덮치면서 단골포장마차는 산산조각이 나고 도마의 주인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는 삶이 곧 노동일 수밖에 없었던 포장마치 주인의 나무도마에 서려있는 노동효과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도구로 사용되다 효용성을 상실해 버려진 잔해(object)를 통해 노동(labor)-효과(성) (effectiveness)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가 김결수의 작품전이 칠곡군 가산면에 자리한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린다.

오는 27일까지 계속되는 작가의 이번 작품전은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위무이자 경외이면서 제의적인 진혼곡이다.

▲ 김결수 작가의 작품이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린다.
▲ 김결수 작가의 작품이 ‘갤러리 오모크’에서 열린다.
나무도마로 시작한 작가의 오브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삶의 현장에서 쓰고 버려진 폐기물인 여러 재질의 물건들이나 폐자재, 버려진 배 등으로 영역을 넓힌다.

노동효과를 찾아내기 위해 전제된 오브제의 조건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던져진 것들’이다. 즉 오브제란 대상(object)이 아닌 또 다른 주체(subject)처럼 간주되는 셈이다.

작가는 “노동효과가 화려한 도시의 외관이라면, 그 가치에 대한 질문은 화려한 외관에 가려진 노동의 그림자가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오브제는 고철이나 폐기된 물건 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정크아트’와 유사성이 있는 듯 보이나, 그가 제시하는 오브제에 담긴 의도와 방법에는 작가만의 독자성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업은 두 가지 관점을 보여준다. 우선 그는 쓰고 버려진 폐품을 통해 산업사회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노동효과’의 흔적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환원해 보려는 노동에 대한 메타포를 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의 흔적이 깃든 대상으로 효용성을 다한 대상에도 정성스럽게 작가의 예술적 철학을 입히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작가의 노동효과를 바라보는 방식이면서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황토 작품이 압권이다. 거푸집을 활용해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고 그 흙덩어리의 표피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허물어지게 되는 과정을 대형 모니터가 실시간 기록한다. 문득 이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력은 또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황토 작품 곁에 전시된 검게 태워진 나무덩어리에 대해서 작가는 “예전 유흥가 길거리에서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재미삼아 행한 야바위의 결과로 박힌 수 천 개의 사연이 담긴 대못을 나무를 태워가면서 다시 뽑아보자고 시도했다”며 “이런 행위는 그 흔적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읽고 또 그 오브제를 둘러싼 처연한 삶의 모습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김결수 작가의 작품
▲ 김결수 작가의 작품
이번 작품전에는 작가의 설치 작업과 함께 운집한 기하학적 형태의 집을 표현한 평면 작업도 함께한다.

작가에게서 집이라는 개념은 보금자리라는 공간을 넘어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점철돼 있는 ‘천채의 중심’으로 삶이 꾸려지고 노동이 집약된 공간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작품 설명 말미에 집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도 칼라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작품에서 추구하는 집이라는 정체성, 상징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인데 흑과백 두 가지 색만 가지고 집이 가진 중후함과 인간에 대한 호소력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결수 작가는 계명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24번의 개인전과 2018평창올림픽 파이어아트 페스타, 2019대구강정현대미술제 등 40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전시문의: 054-971-8855.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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