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타당성 검토를 지시한 것이 영남권신공항의 시발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3월, 밀양과 가덕도를 둔 유치전이 치킨게임으로 치닫자, 입지평가위원회는 동남권신공항을 백지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부활한 영남권신공항은 2016년 6월, 제3의 대안인 김해공항 확장과 대구경북통합공항 이전으로 정리되었다. 합치기 힘들다면 각자도생하라는 뜻이다. 최근, 오거돈 부산시장이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을 천명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영남권신공항 갈등이 재현될 조짐이다.



신공항 갈등을 지켜보면서 일관성과 안정성이 행정의 상위 가치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를 실감한다. 실정법에서도 법적 안정성은 구체적 타당성을 제약하는 법적 가치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신뢰와 질서가 깨어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오랜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최종 결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존재한다. 그렇지만 일단 결정된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를 변경하지 않는 것이 대승적으로 보아 부작용이 적다. 정책이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히듯 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 정책이 때론 최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불만스럽게 여겨진다 하더라도, 그 사안에 대한 공정한 절차를 거쳤다면, 모두가 그 결과를 존중해주는 것이 정의다. 현실적으로 결과적 정의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절차적 정의를 차선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다.



공항을 크게 만든다고 성공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수요가 충분해야 하고, 각 항공사가 그에 맞춰 다양한 노선을 신설해야 하며, 그 노선들이 수지가 맞아야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아무리 번듯한 공항을 지어놓아 봤자, 수요가 모자라면 다양한 노선이 들어올 리 없고, 공항이 유지될 수 없다. 분수에 맞지 않게 무조건 크게 지으면 활주로에서 고추 말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수요는 시장권역 인구에 비례한다. 시장권역 인구는 객관적 변수이기 때문에 지역에 맞는 공항 규모는 쉽게 도출된다. 지나친 애향심에서 맞춤형 공항 규모가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슬프지만 그게 지방의 현실적인 조건이자 한계상황이다. 도로망과 철도망을 개선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여 시장 권역을 확대할 수 있다. 공항이 중심에 소재하는 것이 시장권역 확대에 유리하다. 영남권공항이라면 밀양 정도가 상식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설사 밀양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그 시장 권역에 맞는 규모로 지어지는 것이 경제적이다.



세상사 욕심대로 할 수 없다. 분수도 모르고 베이징을 따라 하다간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다. 실력에 걸맞은 규모가 있다. 인구라는 실력은 인위적으로 맘대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시장 권역을 확대하여 크게 시작하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도권과 경쟁하려면 뭉칠 수 있는 지방끼리 합종연횡하여 실력을 키워야 한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는 글로벌 현상이다. 부산이 홀로 잘살아 보겠다는 생각은 만용이고 이기심이다. 욕심이 앞선다고 공항이 커지고 부산이 커지는 게 아니다. 힘을 모으고 협력해도 시원찮을 판에 혼자 살겠다고 이기적인 선택을 고집하는 것은 모두 다 폭 망하는 길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차분하고 냉정한 자세가 절실하다. 대구와 부산, 가능하다면 광주도 함께 가야 한다. 전주와 대전까지 아우르는 대연합전선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론 무리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광주와 달빛동맹을 맺은 대구는 부산보다 한수 위다.



밀양과 가덕도가 공정한 절차를 거쳐 기각되었다면, 그 대안으로 제시된 김해공항 확장과 대구경북통합공항 이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정을 뒤집고 가덕도신공항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더불어 폭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 입지적 경제적 한계에서 오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망령은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두고두고 다른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부산은 과욕을 버리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영남권신공항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이젠 갈등을 봉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자꾸 지나간 일에 매달려봐야 시간과 정력만 낭비할 따름이다. 아쉽고 안타깝긴 하지만, 이젠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이전과 김해공항 확장에 집중하는 일만 남았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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