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홍매화가 붉게 핀 강변에서 수양버들은 날마다 연둣빛을 더해간다. 봄 햇살에 물결은 금빛으로 찰랑댄다. 차창을 열고 상큼한 봄의 향내를 마음껏 들이켜 본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는 찰나, “띠~링” 문자판이 울린다. 슬쩍 보니 동창 모친의 부고가 뜬 것이 아닌가.

봄이 시작되자 주말마다 결혼 소식에 더하여 부고는 더 많아졌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환절기에 미세 먼지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일까. 미세먼지 소식이 빠지지 않는 보도 거리다.

미세먼지는 입자가 미세할수록 코점막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허파꽈리까지 직접 침투하기에 천식이나 폐 질환 및 조기 사망률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보면 단시간 흡입으로 갑자기 신체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어린이·노인·호흡기 질환자 등 민감군은 일반인보다 건강 영향이 클 수 있다. 눈에는 알레르기성 결막염, 각막염, 코에는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염, 폐기종, 천식 등을 유발하기도 하여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올해 봄에는 미세먼지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미세먼지 탓만 할 수는 없지만 부쩍 늘어난 부고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뿌연 하늘만 보면 걱정스럽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부친을 여섯 달 전에 멀리 떠나보내야 했다. 주말에 내려가 식사할 때까지만 해도 소화가 조금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셨는데 그날 이후 점차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결과는 췌장암이 온몸을 침범해서 더는 손 쓸 수 없게 되었다. 주말 식사를 마지막으로 저세상으로 떠나시는 분께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 이후 몇 달 만에 또 모친을 여읜 것이다. 얼마나 마음 아프고 슬프고 애통할까.

무거운 마음으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의함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봉투를 들고 어쩔 줄 모르는 체하는 나에게 그가 말한다. 부의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악수하며 인사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

일 년도 안 되는 동안 고아가 되어버린 그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를 해 주었다.

상가에 가서는 그냥 나오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하던 그가 또 권한다. 식사 꼭 하고 가라고.

테이블에 앉아 국에 밥을 말고 있으니 동기생들이 들어왔다. 문상 마치기를 기다려 함께 식사를 하고 음료를 권하며 슬픔을 위로하면서도 우리는 수십 년 지난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기까지 하였다. 한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일어서 나오며 얼른 마음 추스르고 잘 사는 것이 돌아가신 분이 바라는 바일 것이니 건강 잘 챙기라는 당부를 하였다.

상가에 조문을 가면 늘 슬픈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가 보다. 동기생 하나가 자신의 신발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신발장에 놓인 신발을 하나하나 스캔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자기 신발을 못 찾을 수가 있느냐?” 보다 못한 성질 급한 동기가 질문을 하니 그 친구 하는 답이 가관이다. “뒷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하긴 자기 구두의 뒷모습을 샅샅이 보면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랴.

울다 웃으며 집에 와서 막내에게 물어보았다. 얼마 전 시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신발 정리 담당을 하였기에. 장례식장에서 신발을 전방으로 넣어두었느냐? 후방으로 넣어두었느냐? 아들은 구두를 기다란 집게로 집어서 넣게 되면 구두는 당연히 앞을 먼저 넣어서 뒤가 보이게 신발장으로 들어간다고. 그래야 집어넣고 또 빼내기 편하지 않겠느냐고. 그러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문득 어느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가 맴돈다. ‘따라 오너라, 하고 앞서가시는 당신 뒷모습이 낯설다. / 뒤축을 내보인 채 놓인 내 낡은 구두를 찾기 위해 신발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적이 있다. 버릴 때가 다 되어서야 구두의 뒷모습을 알게 된 그 날처럼 오늘 당신 뒷모습이 낯설다.// (중략) //헌 구두 속에서 피어난 흰곰팡이, 해 질 녘의 옅은 그림자, 당신 뒷모습에 담겨있는 그 모든 것들,/ 당장에라도 내게 안녕, 하고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

자기 구두를 못 찾아 서성이는 친구 옆에서 수많은 구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짐한다. 봄에는 앞만 보면서 살지 말고 가끔은 뒤도 보면서 살아야 하겠다고.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