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 심훈

발행일 2019-03-03 17:25: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유고시집 『그날이 오면』 (한성도서, 1949)

이번 3·1절 100주년 중앙기념식에서 윤봉길 의사의 종손 윤주빈이 심훈 선생의 ‘편지’를 낭독했다. 심훈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이 편지의 낭독은 애절한 음악이 더해져 듣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경성고보 3학년이었던 심훈은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1월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적삼 차입해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투옥되고서 상당 기간이 지나 8월에서야 어머니께 소식을 전한다.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마음에 꾹꾹 눌러 이 낭독을 들었다면 이 대목에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머님,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독립이라는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약관의 나이임에도 심훈의 조국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은 이토록 절절했다. 사실 심훈은 사진으로 보는 이미지에서 짐작하듯이 양반 가문(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의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비교적 포시라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두 형은 친일파라 할 수 있다. 그의 인생에서 분수령이 된 사건은 당연히 3·1운동이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새로운 세계 질서의 개편이 요청되던 시기에 상해에서 조직된 ‘신한청년당’의 존재와 김규식 박사가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각성하였던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조국광복의 그 날을 염원하면서 1930년 3월1일에 쓴 이 시는 ‘그날’이 찾아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격정과 환희를 절규하듯 노래한다. 처음 시를 대했을 때 지나칠 정도의 극한적 표현과 자기희생의 비장한 목소리에서 오히려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낭독된 ‘옥중편지’를 듣고서 그 의구심은 거두어들였다. 심훈 선생이 조국광복의 ‘그날’을 강인한 신념으로 갈구하였듯 이 시대에도 통일 조국의 ‘그날’을 절규하며 염원할 젊은이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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