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민의 노래/ 백기만



팔공산 줄기마다 힘이 맺히고/ 낙동강 굽이돌아 보담아주는/ 질펀한 백리벌은 이름난 복지/ 그 복판 터를 열어 이룩한 도읍/ 우리는 명예로운 대구의 시민/ 들어라 드높으게 희망의 불꽃// 지세도 아름답고 역사도 길어/ 인심이 순후하고 물화도 많다/ 끝없이 뻗어나간 양양한 모습/ 삼남의 제일웅도 나라의 심장/ 우리는 명예로운 대구의 시민/ 돌려라 우렁차게 건설의 세계에 자랑하던 신라의 문화/ 온전히 이어받은 우리의 향토/ 그 문화 새로 한번 빛이 날 때에/ 정녕코 온 누리가 찬란하리라/ 우리는 명예로운 대구의 시민/ 솟아라 치솟아라 바퀴// 이상의 날개



- 지방자치제시행기념 가사공모당선작(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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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가사는 1950년대 대구시의 지방자치제 실시 기념 현상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금상을 수상한 백기만은 당시 20만 원의 상금을 받았는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2천만 원은 되지 싶다. 이 노래는 영남고 음악 교사인 유재덕에 의해 작곡되어 음반으로 녹음되어있다. 그러니까 5·16군사정변이 일어나기 전에 작시된 것이라 ‘우리는 명예로운 대구의 시민’이라 해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만약 네 분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한 지금 이런 노래를 불렀다면 마냥 자랑스럽기만 할까. 민망함과 함께 자칫 타 지역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목우(牧牛) 백기만(1902∼1969)은 3·1운동 당시 대구고보 학생의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평생을 불의에 맞서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애국지사이면서 문예지 ‘금성’을 창간하는 등 초창기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대구를 사랑하고 아낀 향토 문화계의 거목이기도 하다. 그는 시인이었지만 시인에 머물지 않은 탁월한 문화기획자이며 운동가였다. 자신의 시집은 한 권도 남기지 않았으나 대구 출생인 이상화, 이장희 등을 문단에 연결시킨 매개자였으며, 그들의 시들은 백기만을 통로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의 지역에 대한 긍지와 지역 문화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이 시 한 편에 담겨있다. 하지만 근년엔 옛 대구의 기백과 자부심에 상처 입는 일이 잦아 신암동 애국선열 묘지에 묻힌 선생을 뵐 면목이 없다. 선생의 찬란한 소망은 채 꽃을 피우기 전에 시들어버려 이 노래는 좀처럼 듣기 어려워졌다. 우리나라 민주운동의 효시가 된 대구 ‘2·28민주운동’이 얼마 전 국가기념일로 지정 공포되었다. ‘2·28민주운동’은 당시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대구의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민주운동이다. 그 도화선으로 3‧15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구는 1907년 일본의 경제주권 침탈에 맞서 나랏빚을 갚고 경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 근대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러한 운동 정신은 대구사람들의 DNA 안에 녹아있다. 대구시는 그 명예로운 정신을 되살려 재도약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자 지난주 ‘대구 시민주간 선포식’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 노동운동의 선구자인 전태일 열사와 그의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의 고향이 대구란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명예로운 정신의 자긍심이 꿈틀거릴 때 ‘새로 한번 빛이 날’ 것이며, ‘정녕코 온 누리가 찬란하리라’.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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