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지좆/ 김중식



난 원래 그런 놈이다 저 날뛰는 세월에 대책 없이 꽃피우다 들켜버린 놈이고 대놓고 물건 흔드는 정신의 나체주의자이다 오오 X같은 새끼들 앞에서 이 X새끼는 얼마나 당당하냐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 앞에서 내 가시로 내 대가리 찍어서 반쯤 죽을 만큼만 얼굴 붉히는 이 짓은 또한 얼마나 당당하며 변절의 첩첩 山城 속에서 나의 노출증은 얼마나 순결한 할례냐 정당방위냐 우우 X같은 새끼들아 면죄를 구걸하는 告白도 못 하는 XX놈들아



- 시집『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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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언제 쓰진 것인지 반드시 알 필요는 없으나, 작품 이해를 위해 발표 시점과 배경에 관한 정보가 도움이 될 경우가 있다. 이 시는 1990년대 초 노태우가 전두환에 이어 집권했을 당시,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이 여전히 판을 치는 꼬락서니에 분개하며 조롱을 퍼붓는 해학의 입담이다. 차가운 소주잔에 울분을 섞어 마셨던 술집들의 골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다. 구국을 위한 3당 합당이니 뭐니 둘러대며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고 ‘변절의 첩첩 산성 속에서’ 참을 수 없어 기어이 대놓고 내갈기는 오줌 줄기이다.

녹여내지 못할 말이 없고 수용하지 못할 낱말이 없는 시의 영역이라지만, 비속어를 이렇게 마구 퍼부어도 ‘정당방위’가 될지 모르겠다. 사실 ‘호라지좆’은 욕이 아니라 식물의 이름이다. 그 뿌리는 ‘천문동(天門冬)’이라는 귀한 이름의 약재이다. 부지깽이나물이라 하여 반찬으로 무쳐 먹기도 한다. 하지만 ‘우우 X같은 새끼들아’ ‘XX놈들아’는 분명히 욕설이다. 욕은 욕이되 ‘면죄를 구걸하는 고백도 못하는’ 얍삽한 자들에게 퍼붓는 욕이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추락하면서 그 정도 욕이야 까짓거 못하겠는가.

돌아보면 당시엔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고, 아팠었고 격렬했었다. 1990년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1967년생 시인은 시집의 자서에서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고 밝혔듯이 다 지난 일이고 세월이다. 그때 목울대를 떨면서 울분의 술을 들이켰던 자들도, 스스로의 삶을 방목했던 이들도 세월과 함께 무뎌진 용기에 타협으로 적당히 희석한 부드러운 소주를 마실 뿐이다. 대책 없는 젊음의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한때 젊음을 뜨겁게 불살랐던 가치들이 뒤집어지고, 물신주의와 개인주의 시대로 급속히 변화하는 물결을 탔다.

그 가운데 자아니 정체성이니 하는 것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이론적 방편으로만 무장되어갔다. 많은 386이 그랬고, 486도 그랬으며, 586 또한 그러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시 ‘이탈한 자가 문득’ 중에서) ‘그렇게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라고 항변만 할 텐가.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불안에 떨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이야말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돌이켜보면 이 나라 정치 환경이 언제 한번 아름답고 정의로운 시절이 있었냐만 촛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짜증 나고 부아가 치미는 일들의 연속이다. 현실 정치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기회주의자들의 각축장이다.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 ‘면죄를 구걸하는 고백도 못하는 XX놈들’ ‘호라지좆’의 위용 앞에 머리나 처박을 것들아.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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