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전문가에게 법적 자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전문적인 판단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자격 요건은 유별나다. 법정할 수 없을 만큼 유동적 적응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없을 만큼 정성적 추상적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투표가 정치인의 자격을 판단하는 최선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절차적 과정을 거쳤다고 하여 정치인의 자격이 실체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할 순 없다. 임기가 끝나면 다시 심판받게 하거나 임기 중이라 하더라도 소환·퇴출할 수 있는 방법이 그 틈새를 메우고 있다.



정치인의 자격이 아무리 복잡다기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네거티브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기가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 금기로 무엇을 꼽을 것인지 사람마다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거짓말’을 첫손가락으로 꼽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공적인 업무와 관련하여 국민의 대표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은 정치인의 금기 사항 1호다.



정치인은 공적인 일에 임하여 ‘사심’을 가져서는 결코 안 된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심 자체를 부인할 수 없으나, 국민의 대표로서 공적인 일을 할 때만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정치인의 업무는 불특정 다수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기 때문에 사심을 배제하지 않고는 그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할 수 없다. 정치인은 공공에 봉사하는 공인이다. 정치인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인이 세비를 받긴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필요경비일 뿐이다. 돈을 벌려고 한다면 사업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정보나 권력을 이용하여 사익을 취하려 한다면 이는 그 정체성을 망각한 직무유기다.

최근 손 모 의원의 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본인과 관련 인사들이 목포의 부동산을 대거 매입한 일을 두고 대다수 국민들이 사심이 개입된 것으로 비난하는 모양새다. 공적 업무와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투기 여부와 관계없이 관련 정치인이 해당 부동산을 매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 상식이다. 공적인 의사결정으로 거액의 국가 예산을 집행해야 할 곳에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는 사실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철부지 작태다. 본인 명의든, 측근 명의든, 백지 신탁한 법인 명의든, 그 어느 것이나 사심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그 목적이 박물관이든, 판매시설이든, 본인이 관련된 것이면 사심이 개입될 소지가 있는 이해충돌 사안이다. 공인의 금기다.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실상 나전칠기 따위를 판매하는 가게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사 개입 의혹은 권력을 사유화한 전형적인 적폐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정상적 공개경쟁 절차에 따라 검증되어야 마땅하다. 소관 기관의 업무보고나 국정감사에서 인사 개입을 의심받을 만한 발언을 하거나, 자신이 관련된 물건을 사도록 종용하는 행위는 명백히 사심이 개입된 상식 이하의 행태다. 공적인 일을 처결하는 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다. 본인의 부친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도록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부정청탁이나 직권남용의 소지마저 의심된다. 손 의원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발뺌하려 하고 있다. 본질이 무엇인지 감조차 못 잡으면서 어떻게 국회의원까지 되었는지 의아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손 의원은 논란이 된 사안들에 대해 그 진실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좋아하는 일에 미치든, 투자를 하든, 투기를 하든,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껏 능력껏 해서 대박을 낸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롤 모델’로 부러워하게 될지 모른다.



대중을 다룰 줄 안다며 얄팍한 술수로 국민을 호도하려 한다면 가혹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홍보는 본질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알맹이도 없는 것을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세뇌하는 것은 홍보가 아니라 사술이다. 작은 재주만 믿고 껍데기로 국민을 속이려 하다간 큰코다친다. 국민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때론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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