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지남철/ 신영복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의 『담론』(돌베개,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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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경제과 출신 27세의 대학 강사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감옥살이 후 옥중서신을 모아 출간한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조용하면서도 견고한 정신세계로 다시 우리를 이끈 책이 ‘처음처럼’이며, 작고 1년 전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로 펴낸 책이 ‘담론’이다. 선생 특유의 따뜻한 인생관과 세계관이 묻어나는 글을 읽다 보면 문장의 길이에 상관없이 긴 여운으로 남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봤던 것을 다시 들추어 읽게 되고 선생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선생께서 세상 떠나신 지도 3년이 흘렀다.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 함께 사는 삶, 성찰과 희망에 대한 선생의 여러 글이 가슴 속에서 전율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하지만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살다 보면 숱한 난관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내면서 마음을 굳세게 하는데, 선생이 우리에게 들려준 일관된 주제가 바로 역경을 견디는 자세였다. ‘담론’ 가운데 한 대목인 ‘떨리는 지남철’에 관한 이야기가 요즘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나지만 최근 둘레의 자잘한 구설과 시행착오로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재조산하’의 초심을 잃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리라.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한 그 나침반은 틀리는 일이 없다’란 말도 양심과 각성을 함의한다. 선생은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이라고 했다.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참다운 지식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양심’은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품성이다. 선생께선 양심은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학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를 아울러 포용하는 세계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심은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 형태의 관계론이면서, 가장 연약한 마음 밭에 뿌리내린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 지성’을 강조하면서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자세’라고 했다. 우리는 선생의 지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온전한 시대의 일출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주역의 ‘석과불식(碩果不食)’도 생각난다.

‘석과불식’이란 과실나무에 달린 가장 큰 과일, 즉 씨 과실은 먹지 않고 땅에 묻는다는 의미다. 다 빼앗겨도 종자는 지키라는 뜻이다. 봄이 되어 씨 뿌릴 곡식을 남겨 둬야 이듬해를 살 수 있다는 의미이며,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고 후손에게 복을 끼쳐주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지금 잠시 험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길이 옳고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성원을 철회하기는 이르다. 희망의 씨 종자로 지켜야 할 가치까지 물어뜯어서는 곤란하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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