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우연한 일로 한 후배를 만나 식사를 했다. 그는 이공계출신으로 IMF사태때 중도 퇴직한 50대이다. 그 후 가진 고생을 다했다. 지금은 대학주변에서 조그만 커피판매점을 하고 있다. 그것이 생계를 부지해주는 명줄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푸념이었다. 공무원노조(가칭)의 사실상 파업투쟁으로 대학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어 이날 장사를 망쳤다는 것이다. 주말과 일요일은 학생들이 없어 공치는 날이고 월요일이 큰 기대를 거는 날인데 이마져 날려버렸으니 그의 푸념은 차라리 분노였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민생을 짓밟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게 나라인가"가 그의 결론이다.

흔히 노(勞)와 사(使)는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고 한다. 듣기 좋은 얘기가 아니라 생과 사를 함께 해야할 동반자이다. 풍낭을 만나면 딴떄보다 더 단합하여 이를 해쳐나가야 한다. 폭풍을 만나 배가 풍전등화인데 함께 탄 노사가 싸움질만 벌리고 있으면 공동운명체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무원노조의 불법적 투쟁은 이런 참담한 종말의 예고편처럼 으스스하다.

공무원은 나라의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는 신분이다. 이런 그들이 대명천지의 거리에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불법투쟁에 앞장선다면 법의 집행자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국민은 누구를 믿고 기댈 것인가. 그들의 투쟁을 봉쇄하려는 경찰들도 같은 공무원들이다. 국민들이 놀래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들끼리 적이 되어 OK목장의 결투를 벌이는 광경이 우리의 미래인가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공무원들의 불법적 투쟁은 어떤 명분도 없다. 그들의 신분은 파리목숨과 같은 민간기업 종사자들과는 달리 든든하게 법의 보장을 받고 있다. 여북하면 철밥통이란 말까지 생기겠는가. IMF후 민간기업들이 임금동결이나 감축등 고난을 겪는 속에서도 공무원급여는 물가상승률이상으로 올라 웬만한 기업들 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퇴직후의 연금도 민간들의 국민연금에 비해 상대가 안될 정도로 괜찮다. 욕심이야 한이 없겠지만 이런 정도라면 자제하면서 국민에 봉사해야 한다.

공무원노조들이 요구한 단체 행동권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권리이다.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사용요구도 일본의 경우 공무원단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지나친 욕심이다. 한국의 이익단체들은 좋은 것은 죄다 차지하려는 과욕이 고질병인데 공무원들 마저 이에 뛰어든 것이 슬픈 일이다.

공무원은 다른 이익단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익단체들은 그들 구성원들의 이해를 위한 조직이지만 공직자들은 국민전체에 봉사하는 것이 의무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은 헌법사항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세금으로 그들을 처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의 불법행동은 국민들에 대신 배신이며 의무를 방기하면 공직자의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국민전체를 생각않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농성하는 것을 보고 저들이 과연 공무원인가 묻고 있는 국민들의 허탈감은 당연하다.

성격상 공무원보조의 불법파업은 국민에 대한 투쟁과 다름없다. 국민이 바로 공무원의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이를 정부가 천명한대로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기말 정부의 국기문란을 수속할 수 있다. 나라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국민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지키기 二위해 휴가파업에 불참한 다대수 공무원들에 대한 상대적 예우이기도 하다. 어물어물하고 넘어간다면 성실한자를 바보로 만드는 꼴이며 공무원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성의 노사대립은 한국이 세계화를 거쳐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다. 공무원사회마저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장래는 암울하다. 시초부터 싹을 없애야 한다.

박노웅<본사 논설고문>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