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구경을 시켜 달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지난 일요일 가야산에 들렸다. 한 주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공휴일은 집에서 쉬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공통된 사고이지만 아내와 자녀를 위해 봉사하는 남편이 많으리라. 나도 그 부류중 한사람이라고 단정하니 착한 것 같기도 하고 가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산에 도착하여 아름다운 단풍을 보노라니 억지 춘향으로 밀려 나왔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산 아래쪽에는 가을비답지 않게 폭우가 쏟아지는가 했더니 이내 그쳤다. 그런데 가야산 7부 능선 위에는 조금 전만 하여도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이 금새 새하얀 눈 덮인 겨울산으로 변하여 있지 않는가?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이 왔네, 저 산 위에 첫눈이 쌓였네!” 하며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이 소녀처럼 보여서 싫지 않았다. 나는 내 힘으로 눈을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단풍과 흰눈이 한데 어우러진 광경을 본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도 첫눈이 갖는 의미와 눈 속 단풍의 조화는 과히 장관이며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내친 김에 해인사 입구 약 7㎞의 불붙은 듯한 숲터널을 지나 해인사 입구 매표소에서 차를 돌렸다. 왠지 매표소가 아름다운 자연의 순수성과 자연의 미를 파는 뚜쟁이 같은 감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쯤 가을을 보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가을을 느끼고 그 중심에 서 보자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

산은 역시 가을산이 제격인 듯 한데 하얀 첫눈이 왔으니 그 비경을 어디다 비하랴! 우리는 가끔 바쁨을 핑계로 나들이 한번 시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가정에 불충한 죄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기쁜 마음으로 가족끼리 가을단풍을 구경한다는 것은 일상의 무의미한 세상을 색깔 있고 의미 있는 삶으로 전환하여 준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지금 현 시점에도 가을단풍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정화해 주기에는 충분하다. 눈 속 단풍의 절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니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러니 엄동설한이 오기 전 한번쯤 가을을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정대화<대구과학대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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