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은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등 과도 첨예한 대치상태에 돌입하는 국제적 마찰을 일으켰다. 이런 와중에 실세를 포함한 북한의 고위급 경제시찰단이 여유만만하게 남한의 산업현장을 돌아보고 출국했다. 핵개발은 국제적 경제제재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데 마치 아무일도 없없다는 듯 호기롭게 경제개방학습을 하고 다닌 것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가지 모순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북한의 이중플레이 인가, 양동작전인가, 그 진의가 궁금하다.

시찰단이란 말대신 고찰단(考察團)이란 표현을 쓴 것도 생경하기 그지없다. 논문 같은데서나 사용되는 고찰이란 말을 쓴 것은 단순히 구경하기보다는 생각을 갖고 관심있게 관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시찰이나 고찰이나 그게 그거다. 우리 언론들은 계속 시찰단이란 용어를 써서 남북간의 언어적 간격을 나타내고 있다. 굳이 고찰이란 말을 쓴 것은 어떤 의도를 나타내려는 각색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 시찰단들은 대강대강 살핀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따지면서 경제 둘러보았다. 전문적인 질문이 쏟아졌고 일정도 강행군이었다. 예정에 없던 곳을 한 두군데씩 더 시찰했다. 레저 관광시설까지 살피면서 잘 살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데 보면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그들의 열망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남북문제에 있어서 어떤 기대까지 것 수 있게 한다. 그들의 갈길을 선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 틀림 없다. 종전과 다른 이런 움직임은 긍정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전 시찰단을 부질없는 행각에 그칠 수도 있다. 그들은 경제학습에 우선하여 정치학습을 해야한다. 무엇이 경제개발이나 개방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먼저 배워야 한다. 국제적 고아를 자초하고 있는 핵개발같은 무모한 짓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리 경제학습을 해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8박9일동안 열심히 경제학습을 했지만 오히려 정치학습을 하고 돌아갔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가로막고 있는 한 경제개발은 헛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북한핵에 대한 남한국민들이 분노를 실감하고 갔다면 그것이 그들의 최대경제학습인 셈이다.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은 납북자 문제에 대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가지고 생떼를 썼다고 한다. 남한국민이라면 누구 한사람도 의심없이 굳게 믿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고 딱 잡아떼는 정치적 기만술책으로는 경제학습이란 나뭇가지에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경제는 존재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지 거짓말잔치는 아닌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과 경제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두 가지를 다 이룰 수는 없다. 북한의 선택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미 늦었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외국언론은 북한이 동베르린 붕괴직전과 같은 상황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북한정권이 신의주 개성 금강산등 경제특구를 서두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경제특구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한 절대 불가능하다. 핵개발은 경제특구의 지렛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소련은 막강한 핵무기를 가지고도 무너졌다는 점을 북한은 깨달아야 한다. 이번 북한경제시찰단이 이와 같은 정치적 선택이 절박성을 그야말로 고찰하고 갔다면 민족적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실세들도 끼어있는 시찰단이 바보들이 아니라면 이를 느꼈을 것이다. 포항제철이나 삼성전자를 둘러본 것은 직접적 의미가 별로 없다. 정치적 선택의 화급함을 깨닫게 되는 간접적 의미가 더 절대적이다. 이미 한·미·일의 중유지원 보류가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에는 선택의 여유가 없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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