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부도/ 박권숙

수억 광년 전에 죽은 별이 아직 빛나듯이/다비를 끝낸 꽃이 마지막까지 붙든/찬란한 꽃의 일대기가 밤이슬로 멎어 있다//가장 몸을 낮추어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설산의 순례자가 불가해의 길을 내듯/저렇게 꽃은 나무를 관통한 빛이었다//목조의 붐 한 채를 축조해낸 꽃나무들/꽃 진 자리 봉안된 다라니경 베껴 쓰다/덜 마른 필묵 자국이 밤이슬로 멎어 있다「문학청춘」(2021, 봄호)박권숙 시인은 1962년 경남 양산 출생으로 1991년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겨울 묵시록’, ‘객토’, ‘시간의 꽃’, ‘홀씨들의 먼 길’, ‘모든 틈은 꽃 핀다’, ‘뜨거운 묘비명’ 등이 있다. 그는 지난달 11일 이 땅의 삶을 다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소천한 사실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신록이 초록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싱그러운 유월의 어느 한낮 금정산 자락에서 두 손으로 시집을 받쳐 든 채 햇살보다 더 환하고 싱그럽게 웃고 있는 눈부신 영정사진 속의 시인,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을 숙연히 그려본다. 그는 하늘이 허락한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이 꽃봉오리는 맺었지만 흐드러진 만개함으로 그 절정을 다 누리지 못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실로 그에게 시조는 또 하나의 신앙이었고, 끝까지 그의 삶을 지탱케 하는 불굴의 힘이었다.‘꽃나무 부도’는 그가 마지막으로 지면에 발표한 작품이다. 수억 광년 전에 죽은 별이 아직 빛나듯이 다비를 끝낸 꽃이 마지막까지 붙든 찬란한 꽃의 일대기가 밤이슬로 멎어 있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첫수에서 그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인데 어쩌면 작품 제목을 ‘꽃나무 부도’라고 했을까? 첫수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나타나고 있어서 더욱 애절하게 읽힌다. 가장 몸을 낮춰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설산의 순례자가 불가해의 길을 내듯 저렇게 꽃은 나무를 관통한 빛이었다, 라는 둘째 수에서 받는 심리적 충격도 크다. 목조의 붐 한 채를 축조해낸 꽃나무들 꽃 진 자리 봉안된 다라니경 베껴 쓰다 덜 마른 필묵 자국이 밤이슬로 멎어 있다, 라면서 첫수 종장 후구가 셋째 수 종장 후구에 다시 쓰인 점이 눈길을 끈다. 시인은 의미망으로나 미학적으로도 잘 직조된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종언을 은연중 예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이채로운 이미지의 시어들이 서로 조밀하게 꿰맞춰져 있어 거듭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울컥해진다.오래 전 그가 쓴 시조 ‘종말이 화사하다’를 찾아 읽는다.마지막 꽃을 참하고 완결한 적막처럼//날아가 버린 것이 새 뿐이 아니라면//유정한 마침표 하나 세상 밖으로 던져진다//대낮에도 눈 부릅뜬 별이 다 보고 있다//낭자한 빛의 여백 낙화가 여닫을 때//꽃보다 만발한 허공 종말이 화사하다마지막 꽃, 완결한 적막, 새, 유정한 마침표, 눈 부릅뜬 별, 낭자한 빛의 여백, 낙화라는 이미지가 연첩되다가 둘째 수 종장에서 꽃보다 만발한 허공 종말이 화사하다, 라고 끝맺고 있다. 참 아픈 구절이다.그는 신산의 세월을 꿰뚫고 혼신을 다해 시혼을 불태우며 창작의 길을 걸었다. 그리해 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의 시조 세계는 남은 자들의 몫이 돼 연구 대상이 될 것이고 인구에 길이 회자할 것이다. 그가 보내온 다수의 육필 편지를 기억하며, 달포 전 직접 밝은 목소리로 통화했던 일을 떠올린다. 영영 추억이 돼버렸다. 이제 그는 스스로 노래한 것처럼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그를 마음 깊이 기린다.이정환(시조 시인)

옛날 애인/ 유안진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둥근 세모꼴」 (서정시학, 2011)‘둥근 세모꼴’이란 시집 제목이 범상치 않다. 둥근꼴은 원만하고 완벽한 이상적 세계를 상징한다면 세모꼴은 모나고 불완전한 현실세계를 상징한다. ‘둥근 세모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합이다. 상호 모순적인 세상사를 표현하고자 의도했다면 ‘둥근 세모꼴’은 부조리를 비트는 시를 실은 시집 이름으로 썩 잘 어울린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노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살아오면서 ‘말하지 못한 걸 시로 말하고 싶은’ 시인의 진의를 읽을 수 있다.난해하고 난삽한데다 장황하기까지 한 것을 거부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짧고 간명한 서정시를 극서정시(極抒情詩)라 일컫는다. 극서정시는 그냥 짧은 글이어서는 안 되고 해학과 기지만으로도 부족하다. 촌철살인 시어로 삶과 인생의 진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명언이나 금언 또는 증명이 불필요한 철학적 명제가 극서정시인 건 아니다. 은유와 상징이라는 시의 기본을 갖추고, 짧지만 강한 감동을 주는 시적 장치가 불가결하다. 극서정시를 디지털시대의 시대정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옛날 애인’은 극서정시로서 손색이 없다.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때론 사랑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과학적 연구 성과를 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겨우 5년 남짓. 그 전에 인연의 줄로 두 남녀를 묶어두고 자식을 생산하지 않으면 헤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이다. 남녀 간 이별이 일상사라지만 실제 이별이 두리뭉실 넘어가는 건 아니다. 상대를 해코지하는 끔찍한 사태까지 벌어진다. 감정상태가 격앙된 탓일 수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훈련이 부족한 것일까.한때 서로 사귀다가 갈라선 애인을 우연히 마주 친다면 머쓱하고 어색한 일이다. 서로 알아보고 목례 정도만 나누고 지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우아하고 예의바른 모습이다. 앙금이 깨끗이 정리됐거나 서로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다. 옛정을 생각해서 커피 한 잔 정도 같이 하며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심의 눈이 도처에 있고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터다.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만나 지나친 경우 생각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자신이 못 봤거나 못 알아봤다면 안 만난 것이다. 자신이 그 사람을 봤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고차방정식으로 설정된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증폭된다. 그 사람은 봤을까? 못 봤다면 생각은 거기에서 끝난다. 그 사람이 봤다면 과연 알아봤을까? 삭아버린 모습을 보고 실망했던 걸까? 세월이 흐르고 변했으면 몰라볼 수 있다. 또 모른 척 하는 일도 있을 법하다.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그동안 만사가 잘 풀리지 못해서 창피해서였을 수 있다. 잘 풀렸다면 과시나 보복심리에서 아는 척하며 자랑스레 명함이라도 건네고 갔을 터다. 아는 척 해야 할 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우유부단해 타이밍을 놓쳤거나 그냥 어영부영 지나쳤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아는 척 해봐야 서로 곤란할 뿐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을 확률이 크다. 사랑의 감정은 비록 사라졌지만 관심은 여전히 살아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단 두 마디로 정리했다. 시인의 섬세한 감성에 미소로 답한다.오철환(문인)

친구에게/ 이해인

나무가 내게/ 걸어오지 않고서도/ 많은 말을 건네주듯이/ 보고 싶은 친구야/ 그토록 먼 곳에 있으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너// 겨울을 잘 견디었기에/ 새 봄을 맞는 나무처럼/ 슬기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 주는 너에게/ 오늘은 나도/ 편지를 써야겠구나// 네가 잎이 무성한 나무일 때/ 나는 그 가슴에 둥지를 트는/ 한 마리 새가 되는 이야기를// 네가 하늘만큼/ 나를 보고 싶어 할 때/ 나는 바다만큼/ 너를 향해 출렁이는 그리움임을/ 한 편의 시로 엮어 보내면// 너는 너를 보듯이/ 나를 생각하고/ 나는 나를 보듯이/ 너를 생각하겠지?/ 보고 싶은 친구야「시간의 얼굴」 (분도출판사, 1991)친구는 흔하고도 귀하다. 젊을 땐 세상물정을 모르고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 평생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귀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린다. 잘 나갈 땐 주위에 웃는 얼굴들이 그득하다. 다들 앞장서서 친구를 자처한다. 어려움이 닥치면 그런 얼굴들은 다 떨어져나간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다. 시인은 맑고 고운 마음을 가진 순수한 수녀다. 참다운 친구가 있어 편지를 쓰고 또 시를 짓는다.바람을 타고 숲의 향기를 전해주는 나무처럼 친구는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같이 마음이 서로 통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안다. 나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너를 나도 역시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를 때마다 가슴에 별이 되는 이름’이다. 시련의 시기를 현명하게 극복한 네가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고 형극과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었기에 지금 내가 의연히 존재하고 있는 터다. 나는 나를 향한 너의 발가벗은 마음을 본다. 나도 너를 향한 붉은 마음을 너에게 보낸다.광활한 공간 속으로 파란 산소를 뿜어내며 생명을 불어넣는 나무 같은 친구야, 넌 늘 주기만 하고 난 늘 받기만 한 듯하다. 네가 늘 받기만 해도 좋다. 난 늘 주고 싶을 뿐, 내 마음은 항상 그렇다. 네가 숲속의 한그루 나무라면 ‘나는 그 가슴에 둥지를 트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다. 네가 하늘만큼 나를 보고 싶다면 나는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만큼 너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하늘만큼 땅만큼 어린애 마냥 널 그리워한다.아플 땐 몸을 사리지 않고 돌봐주고, 슬플 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쁠 땐 오히려 더 기뻐해주는 너는 보석 같이 빛나는 벗이다. 진정한 만남으로 간직하고 싶다. 진실한 우정으로 기억하고 싶다. 한때의 동행이기보다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다. 너는 나, 나는 너.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다.나의 실책을 비난하지 않고 보듬어주며 나의 잘못을 배척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너는 가슴이 한없이 넓디넓구나.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남이 하기 어려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서슴없이 하는 너는 보약 같은 존재다. 하여, ‘잎이 무성한 나무에 둥지를 트는 새처럼 네 가슴 속에 한 마리 새’가 되는 내 이야기와 간절한 그리움을 실은 한편의 시를 너에게 보낸다.시인의 속삭임이 귀를 적신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황폐한 정신을 힐링시켜주고 지친 몸을 순화시켜주는 산소 같은 시다.오철환(문인)

또 봄빛/ 김양수

또 다시/예서제서/새록새록 보이는 빛//가만히/손 뻗으면/잎잎마다 만져지는 빛//살살살/계곡을 적시며/너에게도 들리는 빛//화들짝 뛰어나와 산을 오른다./파랗게 새빨갛게 꽃불로 타오른다./세상이 꿈빛에 취해 찰방찰방 눕는다.「시조미학」(2021, 여름호)김양수 시인은 강원도 횡성 출생으로 1994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생명’과 동화집 ‘생각하는 배나무’, ‘개구리가 된 아이들’ 등이 있다.‘또 봄빛’은 동심을 담은 두 수의 시조다. 이미 봄은 가고 여름철로 들어섰지만 다정다감한 정서가 눈길을 끌어서 소개한다. 특별한 이미지의 구현이 보이지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다. 또 다시 예서제서 새록새록 보이는 빛, 이라는 대목에서 소생하는 생명의 기운을 엿본다. 새록새록, 이라는 흉내 내는 말은 잠잔다, 라는 말과 결합되면 가장 어울리는 말인데 빛하고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예서제서, 라는 말도 무척이나 정겹다. 가만히 손 뻗으면 잎잎마다 만져지는 빛에서 생명의 신비가 느껴지는 점도 좋다. 또 빛은, 봄빛은 다시금 살살살 계곡을 적시며 너에게도 들린다고 속삭인다. 예전에 어떤 시인이 봄이면 꽃 피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겨울날 눈 내리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 네 마음의 소리 들린단다, 라고 노래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빛이 나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도 들린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시각의 청각화로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화자는 화들짝 뛰어나와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파랗게 새빨갛게 꽃불로 타오르는 산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꿈빛에 취해 찰방찰방 눕는 장면과 마주한다. 담백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순수한 동심이 맑게 수 놓여서 행복감을 안겨준다. 시를 통해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그가 쓴 ‘매미’라는 동시조가 2000년 7차 교육과정 1-2 읽기 교과서에 수록된 적이 있다. 이제 머잖아 매미가 찾아올 것이다. 아래에 옮겨보겠다.숨죽여 살금살금/나무에 다가가서//한 손을 쭈욱 뻗어/잽싸게 덮쳤는데//손 안에 남아 있는 건/매암매암 울음뿐.동시나 동시조는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발한 것도 이따금 필요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정서나 생활과 거리가 멀면 주독자 층인 아이들이 외면하기 십상이다. ‘매미’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실감나게 잘 그리고 있다. 매미를 잡으려고 숨죽여 살금살금 나무에게로 다가가서 한 손을 쭈욱 뻗어 잽싸게 덮쳤는데, 매미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 눈에는 여름 손님인 매미는 여전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손 안에 꼭 있어야할 매미는 온데간데없고 남아 있는 것은 매암매암 울음뿐이라는 표현이 생생하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고 긴장된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어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어보아도 좋다.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우리 속에는 아이가 깃들어 있어서 이따금 동심어린 발언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마음이 여려져서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시조보다 좋은 동시조가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조를 쓰는 이라면 누구나 동시조를 쓸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동시조 창작에 힘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좋은 동시조가 체계적으로 많이 실려서 시조교육의 요긴한 학습 자료가 됐으면 좋겠다.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흥청거리기도 하고 넘실거리기도 하는 고유의 가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이정환(시조 시인)

존은 제인을 만났지만/ 장마리

~ 푸드 트럭에 행복을 싣고 ~…존은 새벽에 자서 오후에 일어난다. 치킨집을 하는 어머니 탓이다. 치킨집은 오후 5시에서 새벽 3시까지 연다. 생활리듬이 남과 다르다 보니 외톨이가 됐다. 치킨 일을 돕고 싶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마냥 좁은 방에 갇혀 지냈다.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시나리오를 썼다. 서른다섯에야 ‘존’이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됐다. ‘존’은 닭을 튀기는 푸드 트럭을 타고 세상을 누비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박 감독이 영화의 흥행을 위하여 ‘제인’이란 여자캐릭터를 만들었다. ‘존’의 영화화 이후 ‘준수’라는 본명 대신 ‘존’이란 이름을 썼다./ 노트북을 열고 밀린 원고를 썼다. 존이 서사를 완성하면 젊은 작가가 그걸 손보았다. 어제 박 감독은 개인 다큐를 제작해주는 회사를 소개해주었다. 시나리오 작가를 찾는단다. 그 회사 홈에 접속했다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이 다운로드됐다. 삭제하려는 순간 웬 여자가 다급하게 인사를 했다. 외로운 사람을 도와주는 도우미 프로그램으로 한 달간 무료였다. 자신이 필요할 것 같아 찾아왔다고 했다. ‘제인’이다./ 노트북을 켜고 제인을 클릭했다. 휴대폰과 앱을 연동시키고 심장 가까이에 제인을 꽂았다. 존은 제인과 다투기도 했지만 점차 제인에게 빠져들었다. 인생 상담도 하고, 필요한 정보도 얻었다. 다큐회사 대표가 존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무선이어폰으로 제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를 만나러갔다. 제인은 옷차림부터 행동 하나까지 코칭해 주었다. 다큐회사 대표와 만나 호흡을 맞춰 일해보기로 합의했다. 장관, 대기업 총수 등이 다큐 제작 의뢰인이다. 모두 천편일률적인 패턴이다. 그러한 획일적 패턴에 대한 설계도를 제인이 만들었다. 제인은 그의 어머니를 찾아보라는 인간적인 컨설팅도 했다./ 존은 새벽 두 시에 어머니 가게로 갔다. 십오 분 거리였으나 혼자 다니기엔 무서웠다.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게를 정리하는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어머니 등은 말라서 바스러질 듯했다. 편의점을 지날 때 어머니는 술 한잔하자고 했다. 어머니와 처음으로 술을 마신 덕분에 잠을 깊이 잤다./ 제인은 글쓰기 도우미 ‘스토리헬퍼’를 소개해줬다. 스토리헬퍼의 도움을 받아 의뢰받은 시나리오를 쉽게 완성했다. 무료체험기간이 끝나고 제인의 몸값을 겨우 지불했다. 제인을 곁에 두려면 부지런히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존은 단순화된 노동에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제인이 새로운 일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또 패턴을 찾아내고 프레스로 찍어낼 터다./ 어머니가 카드를 주며 바람이라도 쐬고 오란다. 존은 지금껏 어머니를 위해 한일이 없었다. 푸드 트럭으로 전국을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존은 이어폰을 버리고 제인을 삭제했다.…치킨집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성장한 존은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자식을 가게에 나오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험한 일을 하는 남루한 부모를 부끄러워했던 수많은 흙수저처럼 어머니를 멀리서 지켜보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빙빙 돌았다. 우연히 찾아온 도우미 앱으로 소외된 삶과 외로운 마음을 달래며 새로운 삶을 영위한다. 그러한 단조롭고 프로그램화된 생활에 자존감이나 성취감은 없다. 어느 날, 어머니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진정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오철환(문인)

딱 하루만/ 김진희

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미루다 못 차린 밥상 눈물 섞인 밥 짓겠네/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네//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주면/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네/아, 그때/철없이 대든 것/무릎 꿇고 빌겠네//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내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말하겠네/못 다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겠네「시조미학」(2021, 여름호)김진희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1997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내 마음의 낙관’, ‘슬픔의 안쪽’, ‘바람의 부족’ 등이 있다. 유성호는 김진희 시인의 시조 세계를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과정을 곡진하게 담은 서정의 보고라고 평하면서 시 쓰기 과정에 대한 메타적 인식과 표현이 다양하게 갈무리된 결실로 봤다. 즉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자각과 충일의 과정을 시 쓰기로 비유하면서 결국 시 쓰기가 자신이 완성하고자 했던 존재론적 역동성의 은유 형식임을 고백하고 있다고 살핀 것이다.‘딱 하루만’에서 화자의 마음은 그지없이 간절하다. 이 작품은 별다른 미학적 수식이 없지만 그 간절함 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여러 번 읽게 만든다. 처음에는 딱 하루만이라고 하다가 하루 중 반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와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사모곡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미루다가 못 차린 밥상을 위해 눈물 섞인 밥을 짓겠노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영영 삭이지 못할 크나큰 회한을 엿본다. 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노라는 시의 화자는 이어서 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주면 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노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그때 철없이 대든 것을 상기하면서 무릎을 꿇고 빌겠노라고 노래한다. 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자신의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속삭이면서 속 깊은 정을 나누겠네, 라며 못 다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과 감회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미 엄마는 다시금 화자 곁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별리다. 추억 속에서만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다. 바쁘다는 까닭으로 함께 한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한 상상은 화자의 그리움을 안으로 다독이는 일이기에 소중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절절한 사모곡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남아 여울물처럼 맴돌 것이다.그는 단시조 ‘철새들’에서 저 군무는 바람의 쇼이자 생존의 전략이다, 라고 단정 짓고 허공 속 무희들이 팽팽히 대오를 지어 어디로 날아가는가, 라고 물으며 빈 하늘에 비행 중인 철새들의 군무로부터 바람의 쇼와 생존의 전략을 동시에 읽어내고 있다. 역동적인 이미지 구현이다. 또한 ‘해질 무렵’에서 바비가 휘몰아치던 그 광란 끝에서는 세상의 다친 길들이 거꾸로 처박힌 채로, 생살이 찢긴 채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다. 바비는 태풍 이름이다. 이제 다 지났다고 불행은 순간이라고 간당간당 열매 맺어 휘어지는 가지들이 안쓰러워서 하늘은 품에 안으며 노을을 덮어주는 것을 시의 화자는 유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시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가? 때로 들끓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더러는 삼라만상으로부터 불현듯 나타나서 시인으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든다. 끊임없는 혼자만의 중얼거림과 궁굴림 끝에 한 줄의 시는 잘 직조된 의미다발로 세상 속에 비로소 현현한다. 그 순간을 위해 쓰는 일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이정환(시조 시인)

황톳길/ 김지하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숲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황토, 한얼문고, 1970」남도의 황톳길은 누렇지 않고 차라리 붉은 핏빛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피의 역사가 땅을 핏빛으로 물들였는지 모른다.‘‘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한하운 시인도 시 ‘전라도길- 소록도 가는 길’에서 황톳길을 붉고 숨 막히는 길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황톳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땅 위에서 피 흘리고 스러져간 선인들의 자취가 소록소록 떠오른다. 의병의 죽창, 동학군의 함성, 멀리 백제부흥군의 비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붉은 땅의 험난한 운명과 한 맺힌 수난사가 가슴을 저민다.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선인의 시련과 고난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애쓴 보람도 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두 손이 묶인 채 삶을 태워버릴 듯 뜨거운 태양 아래 황톳길을 마냥 바라본다. 총칼의 위협을 받으며 핏빛 황톳길에 처연히 서 있다. 숭어가 뛸 때 가마니에 싸여 죽은 선인이 걸었던 길이다. 그게 운명이라면 기꺼이 그 뜻을 이어받을 터다.탱자나무의 검푸르고 억센 속니파리는 이 땅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의병과 동학군의 시신을 거름으로 받아 성장한 탓인가. 죽창을 만들던 대숲엔 아직도 대가 성글고 선인들 흘린 피가 여전히 솟구치고 있다. 죽순에 괴는 수정처럼 맑은 물방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쓰러져간 선인의 고귀한 영혼임을 어찌 알지 못하랴.동족상잔으로 이 땅이 유린될 즈음, 어린 꼬막마저 말라죽은 길고 잔인한 가뭄을 겪었다. 황톳길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푸른빛 도는 내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생존의 터전마저 잃고 개펄을 떠났지만 밭을 갈고 하얀 메밀꽃을 바라보면서 한 가닥 파란 희망을 일궈갔다. 한 십년 지나 다시 손발이 묶이고 고난이 찾아왔다. 황톳길은 말 그대로 수난의 여정이다. 더 많은 피를 황톳길에 쏟아 부을지라도 그 길을 뚜벅뚜벅 갈 것이다. 선인들이 그러했듯이. 선인의 피를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시련의 역사를 극복하고자하는 몸부림이 처절하다.오철환(문인)

괴물/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하나「황해문화」 (새얼문화재단, 2017 겨울)갑질은 패가망신이다, 갑이 갑으로서의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건 정상이다. 갑질은 갑의 우월적 지위와 권한을 부당하게 악용해 을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말과 행동 등 모든 영향력을 망라한다. 때로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작위가 없는 것이 을을 해한다면 부작위도 갑질이 될 수 있다. 갑질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SNS를 통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나 과도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평생 쌓아올린 공든 탑을 단숨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미투(Me Too)는 ‘나도 당했다’는 의미로 갑질에 대한 폭로이자 고발이다. 갑질이 성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갑의 유명세에 따라 사회적 파장은 폭발적일 수 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지점임을 부인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미투는 거부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관계가 잠복돼 있다는 특수성이 있다. 성폭행은 갑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중죄로 다스리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미투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방점이 찍힌다.En선생의 여성편력이나 성추문은 비밀 아닌 문단의 술자리 안주다. 그래서 En선생에게 ‘나도 당했다’는 미투 폭로는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마치 처음 안 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정도의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는 무차별적으로 거의 일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시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을뿐더러 다소 시시하다는 반응이 솔직한 표현이다. 하지만 노벨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문단의 거물을 이 정도나마 직설적으로 풍자하는 시를 쓴 시인은 정신력이 남다르고 용기가 가상하다.미투는 페미니즘과 결이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결코 적이 아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이성을 유혹하는 일은 본능이고 바람직하다. 다만 성적인 시도는 서로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으로 불쾌한 말이나 접촉을 기도하는 것은 미투 대상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성적인 갑질은 조속히 추방해야 할 폐단이다.오철환(문인)

달북/문인수

봐, 달은 어디에나 떠 기울여 널 봐/그 마음 다 안다, 그건 그래, 그렇다 하는…/귀엣말,/환한/북/소리,/지금 다시 널 낳는 중「달북」 (2014, 시인동네)문인수 시인은 1945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1985년 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늪이 늪에 젖듯이’, ‘뿔’, ‘홰치는 산’, ‘배꼽’, ‘동강의 높은 새’, ‘쉬!’, ‘적막 소리’ 등과 동시집 ‘염소똥은 동그랗다’와 시조집 ‘달북’이 있다.그의 시조는 기율에 충실하면서도 끈끈한 자생력을 가지고 있고 자연친화적이다. 그만의 문체와 시풍, 다채로운 유형의 전개 양상으로 시조의 또 다른 표본을 제시한다. 본업인 자유시에서 일가를 이뤘기에 그의 시조 또한 자유분방하고 참신하다. 문학적 성취가 남다른 점은 미세한 감각과 개성적인 세계 해석 때문이다.‘달북’을 보자. 달은 어디에나 떠서 우리를 바라본다. 달은 사람들에게는 대화 상대다. 교감이 이뤄질 때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이해와 신뢰를 쌓게 된다. 그건 그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분리될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귀엣말과 같은 환한 북 소리가 들리고 다시 출산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낳는다는 것은 영원 지향적인 사건이다. 면면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달이 북인지 북이 달인지 모르는 가운데 자아와 더불어 한 호흡을 이루며 빛나는 세계가 ‘달북’이다.한 편을 더 살피자. 또 다른 단시조 ‘구름’에서 저러면 참 아프지 않게 늙어갈 수 있겠다, 라면서 딱딱하게 만져져서 맺힌 데가 없는지 제 마음을 또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라고 노래한다. 이렇듯 화자에게 구름은 무심코 흘려보내는 단순한 구름이 아니다. 구름에서 자아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구름의 생성과 현현에서 아프지 않게 늙어 갈 수 있는 미덕을 읽는다. 순응이다. 앞서 살폈듯이 내 몸에서 맺힌 데나 딱딱하게 만져지는 곳이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구름의 피어오름을 우리는 흔히 뭉게뭉게, 라고 적는다. 이 의태어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종장에 이 말이 놓이면서 우리 삶과 묘하게 접맥돼 강한 울림을 낳는다. 마치 구름처럼 자신의 마음을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성이다. 내면 성찰이다. 원문을 보면 초장을 따로 뚝 떼어놨는데 그것도 의도적이다. 자연을 노래하되 인생의 깊은 의미가 실리자 ‘구름’은 홀연히 의미심장한 소우주로 탈바꿈한다.문인수 시인의 유일한 시조집 ‘달북’의 단시조들은 단순한 시의 한 형태가 아니다. 영적인 생명체다. 살아 움직이는 서정적 생명체로서의 시조는 현대인들의 능동적인 생존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정신적 양식(樣式)과 양식(糧食)이다. 날마다 복잡다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조 감상과 시조 쓰기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부대끼고 때로 쓰러져가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간명한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며칠 전 시인은 땅위의 삶을 다하고 하늘로 떠났다. 늦깎이로 등단했지만 꾸준한 시작 활동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입지를 굳혔고, 따뜻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해왔다. 압축적이고 절제된 시어로 외롭고 소외된 존재들을 감싸 안으며 공감과 연민을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썼다. 그는 진실로 전 생애를 던져 시와 더불어 살았다.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토록 불후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그의 생애에 유일한 시조집 ‘달북’을 마음 깊이 기억하면서 그를 아프게 기리는 이 글을 맺는다.이정환(시조 시인)

지하생활자/ 임성용

~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모노드라마에서 내가 연출을 맡고 그녀가 주연을 맡았다. 마지막 무대의 관객은 11명. 공연이 끝나고 그녀와 포차에서 술을 마셨다. 그녀는 심각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풀어놓았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뜬금없이 아랫도리가 꿈틀거렸다. 포차를 나와 모텔로 갔다. 급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그녀 옆구리에 난 사마귀를 보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던 그녀가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 애인이 된 것도 상황이 만든 결과였고 이젠 상황이 우리를 헤어지게 만든다는 의미인 듯하다. 빙빙 돌리다가 마침내 헤어지자고 마침표를 찍었다. 동의했다. 이제 모텔을 나가면 서로 남남이다. 그래도 내가 싫은 건 아니란다. 그 후 그녀는 극단도 그만두고 어떤 세무사와 결혼했다./ 지하기계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다섯 사람이 눈보라 속에서 발이 묶였다. 가이드는 끊어진 무전을 서쪽 봉우리로 가서 연결해보자고 한다. 그때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2005호에서 화재경보기가 운다며 지금 가서 해결하란다. 또 그 할아버지 집이다. 치매노인이 신문지에 불을 붙여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고선 샤워를 하고 있을 터다. 나는 시설관리를 하는 사람이지만 세대의 형광등 가는 일부터 치매노인 뒤치다꺼리까지 하고 있다. 2005호 문 앞엔 반백의 할머니가 홀딱 젖은 몸으로 서 있다. 거실로 들어가니 벌거벗은 치매노인이 물을 한 바가지 뿌렸다. 우선 수도 밸브를 잠갔다. 거실 스프링클러마저 틀어막고 싶었다. 안방과 작은방은 벌써 막았다. 소방법 운운하는 소장의 반대로 거실만 살려둔 상태다. 치매노인은 아이처럼 물을 뿌리며 장난을 걸어왔다. 치매노인은 자기 아내인 할머니를 엄마로 여겼다. 대충 청소를 하고 연기도 내보냈다. 할머니가 목욕 값 만원을 건네주었지만 거부했다. 할머니 동의를 얻어 거실 스프링클러를 틀어막았다. 기계실로 돌아와 소장에게 처리결과를 보고했다. 스프링클러를 다 막았다고 하자 소장은 문제가 생기면 나보고 책임지라고 했다. 다시 가서 복구시켜놓겠다고 하자 그제야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무대로 돌아가야겠다. TV를 보면서 자장면을 시켜먹었다. 먹는 중에 스프링클러를 살리라는 소장의 지시가 내려왔다. 다시 2005호로 갔다. 벨을 울렸으나 반응이 없다. 문은 열려있었다. 집안은 연기와 가스로 가득 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거실바닥에 쓰러져있다. 관리실로 응급상황을 알렸다. 곧 직원들이 왔으나 정신이 스멀스멀 멀어져갔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나는 구급차 안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수습대원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자세한 경위는 모른단다. 머리가 지근거렸다. 수습대원이 눈을 까집고 플래시를 비췄다.…연극 연출을 하다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낙담한다. 애인은 상황 운운하며 떠나간다. 헤어진 애인은 경제력 있는 세무사와 결혼한다. 실의에 빠져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고자 지하로 숨었지만 현실은 더 처절하게 쫓아온다. 거기서 치매노인부부를 만나고 극한적인 삶의 민낯을 경험한다. 엄혹한 현실을 피한다고 해 엄혹함이 사라질까. 삶이 비록 무심하게 비켜가더라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허무를 극복하고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인간이 상황을 만든다. 인생은 연극이다.오철환(문인)

나무지게 다시 읽다/윤정란

삭신이 다 삭도록 노역에 쫓기다가/헛간에 처박힌 게 네 잘못은 아니지/치매가 밤을 더듬는 손금마저 없는데//어둠을 톺아 내는 나무지게 살펴보니/이 눈치 저 눈치로 숨어살던 거미가/햇살을 촘촘 엮어서 집 한 채를 올렸네//한평생 땀에 절어 하늘을 받든 것이/문명에 버림받고 이름마저 잊혔지만/단 하루 허락된다면 별을 지고 싶다네「오늘의시조」 (2020, 제14호)윤정란 시인은 경남 김해 출생으로 1983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푸른 별로 눈뜬다면’, ‘꽃물이 스며들어’, ‘뿌리가 이상하다’, ‘너 참 잘났다’가 있다. 그는 상처 받은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사랑이 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이들에게는 불빛이 돼 다함께 어울리는 노래로 피어나기를 바라며 또 한 채의 집을 짓는 시인이다. 강희근은 그의 세계를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의 유교적 이성주의와는 확실히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고 보면서 포괄적이고 개념적인 상황이 아니라 개별적인 정서와 관념이 드러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한의 정서에도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는 점을 조명했다.‘나무지게 다시 읽다’를 아프게 살핀다. 삭신이 다 삭도록 노역에 쫓기다가 헛간에 처박힌 게 네 잘못은 아니지, 라는 진술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읽는다. 그는 이미 치매가 밤을 더듬는 손금마저 없을 만큼 신산의 삶 끝까지 와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헛간에 처박힌 것은 분명히 그의 잘못일 수가 없다. 다음 둘째 수에서 화자는 어둠을 톺아 내는 나무지게를 살펴보는데 이 눈치 저 눈치로 숨어살던 거미가 햇살을 촘촘 엮어서 집 한 채를 올리는 것을 본다. 이 장면은 고독한 나무지게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다. 한평생 땀에 절어 하늘을 받든 그 결과가 문명에 버림받고 이름마저 잊혀진 일이 됐지만 그러한 지게에게도 소망이 하나 있다. 단 하루 허락된다면 별을 지고 싶다는 것이다. 소박한 나무지게의 바람은 곧 이뤄질 성 싶다. 예전에 지게는 굉장히 긴요한 생활의 도구였다. 시골 생활에서 지게는 쓰임새가 많았다. 지게로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던 일은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지게를 생각할 때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 등에 늘 붙어 있다시피 한 지게를 통해 우리는 지난한 노역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단순한 회고만은 아니다.그는 또 ‘풀을 베다’를 통해 전원생활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싹둑 싹둑 잘리는 풀이라 밟고 가도 살다보면 꽃필 날 한 번쯤 있을 텐데, 라면서 무조건 들이대다가 뿌리까지 뽑힐지 모른다는 우려를 한다. 자란 풀은 베더라도 그 생명의 근원은 소중히 지켜져야 한다는 생명 사랑이다. 때로는 날 선 마음 잘 삭혀 버무려서 세상의 길이 되는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낫에 베인 채 적개심을 쌓는 때도 있음을 표출한다. 그리고 손발이 다 닳도록 허공에 새긴 이름을 떠올리면서 바람에 흘린 눈물 바람으로 닦아 놓고 내 안의 초록 길을 본다. 해와 별이 숨 쉬는 곳이다.‘나무지게 다시 읽다’를 살피다가 잊어버린 것을 떠올려봤다. 바로 지게작대기다. 지게를 받치는데 쓰이는 지게작대기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세상을 가리키기에 지게작대기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떠받치기에 지게작대기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두드리기에 지게작대기만한 것이 없지 않는가. 아마 낡은 나무지게 가까이 지게작대기도 하나 놓여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풀을 베는 일, 나무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인데 특히 나무지게는 추억 속의 도구로만 남은 듯해서 아쉬움이 크다.이정환(시조 시인)

메주/ 신달자

날콩을 끓이고 끓여/ 푹 익혀서/ 밟고 짓이기고 으깨고/ 문드러진 모습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붙는 사랑/ 다시는 혼자가 되어 콩이 될 수 없는/ 집단의 정으로 유입되는/ 저 혼신의 정 덩어리/ 으깨지고 문드러진 몸으로/ 다시 익고 익어/ 오랜 맛으로 퍼져가는/ 어설프고 못나고 냄새나는/ 한국의 얼굴/ 우리는 엉켜버렸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실 날로 서로 엉켜/ 네 살인지 내 살인지/ 떼어내기 어려운 동질성/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네가 아픈/ 그래서 더는 날콩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발효의 하얀 금줄의 맛/ 분장과 장식을 모두 버리고/ 콧대마저 문지른 다음에야/ 바닥에서 높고 깊은 울림으로/ 온몸으로 오는 성(聖)의 말씀 하나「오래 말하는 사이」 (민음사, 2004)시 ‘메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메주에 대한 고찰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메주는 발효식품이다. 우리 전통음식엔 발효가 많이 응용된다. 김치나 젓갈이 대표적이고 모든 요리의 감초인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이 또한 그러하다. 된장 등 장류는 한식에서 간을 맞추고 고유한 맛을 내는 기초식자재일 뿐 아니라 조미 기능까지 일부 수행한다. 그만큼 이들 장류는 우리 식생활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된장을 비롯한 장류는 모두 메주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메주는 가장 중요한 토종음식의 바탕이고 우리 전통음식의 모체다. 메주는 콩을 삶거나 쪄서 절구나 방아 따위로 찧은 다음 나무틀로 찍어낸다. 삶은 콩을 담은 천 포대를 발로 밟아 콩알을 으깬 후 메주 틀로 찍어내는 집도 있다. 집집마다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맷돌 모양이거나 납작한 직육면체가 일반적이다. 메주를 말린 다음 짚 위에 올려놓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적당하게 띄우는 게 신의 한 수다. 적당히 뜨면 겨울동안 매달아 놨다가 봄날이 오면 햇볕에 말린다.자급자족하던 시절 방이나 처마에 매달린 메주는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광경이었다. 방안은 쾨쾨한 메주 뜨는 냄새로 가득 찼다. 횃대에 걸어둔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살갗에도 온통 쾨쾨한 냄새가 배여 들었다. 그 뿐이랴. 된장찌개나 된장국을 먹고 나면 속까지 쾨쾨했다. 한식의 또 다른 감초인 마늘이 가미된 독특한 냄새는 생활 속에 체화된 우리 삶이었다.집집마다 메주 띄우는 방법이 조금 다른 까닭에 메주 외양이나 품질도 제각각이었다. 누르스름한 것에서부터 거무스름한 것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메주의 색깔과 냄새는 그 집안 전통으로 자리 잡을 만큼 고유한 차별성이 있었다. 잘 익은 메주를 가지고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빚는다. 메주는 장맛뿐만 아니라 그 집안음식의 정체성과 위상을 좌우하는 키였다. 메주는 치즈와 비슷한 점이 많다.메주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 결과, 네와 내가 하나 된 상태다. 뭉치고 엉켜서 떨어질 수 없고, 이전의 개체로 돌아갈 수 없다. 섞어서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발효해 몸에 이로운 것이다. 상호 화학적 결합을 이룬 상태다. 곰삭아 끈적끈적한 실을 공유하게 된다. 메주는 집단적 정서를 가지며 동질성을 보여주는 우리네 얼굴이다. 어설프고 못나고 냄새 나면 어떠랴. 가식과 허세를 버리고 겸손하게 처신하며 너와 나를 차별하지 않고, 관용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미덕은 성인의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메주가 주는 은유는 깊고 의미심장하다.오철환(문인)

낫과 호미/ 서욱풍

먼 산 진달래도/ 새색시 분홍저고리인양/ 수줍게 피고/ 종다리도 지굴지굴/ 글을 읽는 봄이 와서/ 아버지와 함께 숫돌에 낫을 갈아/ 산에 소 풀 베러 갔네// 졸졸졸 산골 물소리/ 햇빛 보러 번져 나오고/ 아버지와 함께 한나절 풀을 베는데/ 구름 속에서 종다리는 지굴지굴/ 봄바람은 이마에 흐르는 땀/ 닦아주곤 지나가는데/ 소 풀 한 짐 지게에 지고/ 끙끙 대며 비탈진 산길 내려오다가/ 뒤처진 나는 먹을수록 배고프다는/ 진달래꽃 꽃잎 따먹으며/ 산골 소년이 되어 있었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어미 소는 외양간에서 엄매엄매~~/ 아기 소도 아니면서 엄매엄매/ 어른 행세하며 수염 기른 염소도/ 엠매엠매~~/ 좀 우습기도 했지만/ 베어온 소 풀 나누어주니까/ 잘도 먹어치우는데// 아버진 논 갈러 들에 가시고/ 엄마는 호미로 캐어온/ 달래 냉이 씀바귀/ 마당가에서 다듬고 있었네/ 오늘은,/ 낫과 호미가 수고한 날이었네「오늘의 가사문학」 (열린시학사, 2021 여름호)시골에 살아본 사람은 소가 얼마나 소중한 가축이란 걸 잘 안다. 소는 논밭을 갈고 농산물이나 무거운 짐을 옮겨주며 소달구지를 끌어주는 믿음직한 전천후 일꾼이다. 살아있는 동안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 같은 존재다. 죽어서는 가죽에서 뼈까지 모두 다 남김없이 내어준다. 살신성인을 몸으로 실천하는 어진 성자다.그런 까닭에 소는 어느 농가에서나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가족이 밥을 먹기 전에 소에게 먼저 먹이를 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개나 돼지와 같은 가축은 아무리 친해도 사람이 먼저 먹고 난 연후에 남은 음식을 거둬 먹이로 준다. 소가 집안을 지탱하는 대들보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그 건강과 안녕을 챙겨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소의 위상을 감안하면 소 먹이러 가거나 풀 베러 가는 일은 농가의 필수 일과이나 어른이 전담할 정도로 일의 강도가 높진 않다. 아버진 바깥일에 매이고 어머닌 집안일로 바빠 짬을 내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소먹이는 일은 애들 몫으로 떨어진다. 소고삐를 잡고 나온 애들이 산과 들에 소를 풀어놓고 올망졸망 뒹굴며 놀곤 했다.풀 뜯어먹게 소를 놔둘 시간이 없는 경우나 겨울사료 비축 목적으로 소 먹일 풀을 베어와 햇볕에 말려둬야 한다. 이 풀 베어오는 일도 애들 몫이다. 허나 풀 베는 일은 애들 일치곤 만만찮다.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쪼그리고 앉아 끊임없이 몸을 놀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풀 베는 일도 위험하지만 망태기나 지게로 풀을 싣고 오는 일도 힘들다.연분홍 진달래가 바위틈에 피어있고 하늘엔 종달새가 지저귀는 봄날, 아버지와 함께 산으로 풀 베러 간다. 시냇물은 재잘대며 햇볕을 쬐고 바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 아버진 풀 한 짐 지고 앞서서 가고 시인은 드문드문 핀 진달래를 따먹느라 뒤처진다. 진달래론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감칠맛이지만 따먹을수록 허기진다.소와 염소가 싱싱한 먹이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엄마소가 아기처럼 ‘엄매’한다. 경상도사투리로 엄마를 ‘엄매’라 한다. 수염 난 염소도 ‘엠매’한다. 염소가 소를 따라 우는 재롱이 귀엽다. 우습다. 또 ‘엠매엠매’를 연속해서 들으면 염소 울음소리 ‘매엠’이다. 어른은 쉴 틈이 없다. 아버진 논 갈러 가고 어머닌 봄나물을 다듬는다. 정겨운 산골생활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에 선하다.오철환(문인)

시간이 고이는 저녁/권영희

사려 깊은 사람처럼 속이 꽉 찬 배추와/저 혼자 양껏 자란 청무 앞에 만난 저녁/어머니 손맛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인다//살짝 데친 잎에다 송송 썬 추억을 얹어/된장까지 올린 쌈을 미어지게 한 입 물면/햇살에 그윽해진 맛이 입 안 가득 번지는//나이를 먹는다는 건 일테면 비로소/무진장 엄마 맛이 그리워진다는 것/어릴 적/데면데면하던 일들이/때로 몹시/고픈 것「시조세계포엠」(2018, 시조세계시인회)권영희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출생해 2007년 유심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오독의 시간’, ‘달팽이의 별’이 있다.‘시간이 고이는 저녁’은 일상에서 얻은 시다. 사려 깊은 사람처럼 속이 꽉 찬 배추와 저 혼자 양껏 자란 청무 앞에 만난 저녁에 어머니 손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인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는 더욱 그립고 어머니의 손맛은 아련해서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살짝 데친 잎에다 송송 썬 추억을 얹어 된장까지 올린 쌈을 미어지게 한 입 물고 있다. 그때 햇살에 그윽해진 맛이 입 안 가득 번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금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어느덧 예전의 어머니의 모습을 빼닮은 자신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일테면 비로소 무진장 엄마 맛이 그리워진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또한 어릴 적 데면데면하던 일들마저 때로 몹시 고픈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환기한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성이 없고 어색한 것이 데면데면한 일인데 어릴 적에는 숫기가 없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조차도 나이 들면서 아쉽고 그리운 것이 돼버렸다.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서 모든 것을 과거 속으로 묻어 버리고 물 밀들 밀려오는 미래는 예측불허라서 때로 조바심을 친다.하여 시인은 또 다른 정경을 떠올리면서 은은한 정서에 젖는다. ‘기억 속의 멜로디’다. 아주 오래 전 하모니카 부는 밭이 하나 있었는데 키 큰 옥수수와 키 낮은 덩굴 콩이 높은음 낮은음을 무는 어린 날의 놀이터에 대한 회상이다. 그곳은 꿈같은 곳이어서 꿈꾸게 하는 곳이고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설레는 공간이다. 흡사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그곳의 추억은 지금의 삶을 견인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둑에 앉아 흙으로 두꺼비집을 지으면 짓궂은 뱀도 하나 슬며시 끼어들어 버려 아버지가 달려와 안아줬을 때에야 울음보가 터졌다. 가까운 곳에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화자는 아아 다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서 세월은 나조차 날 몰라보게 했지만 풀물 든 원피스 입고 다시금 거기에 서고 싶다고 말한다. 꿈같은 그날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누구인들 그렇지 않으랴.그는 또 두 수로 된 ‘탈모’에서 나이가 들면 피할 수 없는 경험을 표출한다. 여긴 그대가 뜨겁게 앉았던 자리는 사랑이 가버렸어도 지지 않는 분화구여서 기억을 벌목해 보아도 베어지지 않는다, 라고 읊조리고 있다. 참신한 비유가 눈길을 끈다. 삶이라는 주사에 망각이란 약을 삼켜도 면역이란 좀체 생기지 않는 자리인 내 안에 우주처럼 앓다 간 그리움이 하나 피어 있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탈모를 이렇듯 다른 시선으로 형상화한 것은 새롭다. 사랑, 분화구, 벌목, 망각, 면역, 우주, 그리움과 같은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결합돼 시에 이채로움을 더한다.권영희 시인의 시편은 사람살이의 살가움과 그리움, 애틋함을 들춰 보여준다. 이젠 유월, 본격적으로 여름이다. 짙푸른 숲이 삶에 부대끼고 지친 이들을 부를 때 한걸음에 달려갈 일이다. 시 한 편 나직이 읊조리며.이정환(시조 시인)

그 어두운 밤의 우수/ 이충호

~ 아물지 않은 망국의 상흔 ~…‘고타냐’와 만나기로 하였으나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김한슈라’의 딸. ‘김한슈라’가 아버지의 첫 부인 ‘김분례’와 동일인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김분례’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으며 20년 전 타슈켄트에서 이주해왔다고만 했다. 그녀 어머니 묘소에 함께 가볼 작정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김한슈라’를 ‘김분례’로 추론, 그 딸과 약속을 잡았는데 허사가 됐다./ 우수리스크 묘지로 가서 고타냐의 말을 참고해 김한슈라 묘를 찾았다. 이름과 생몰연도만 있을 뿐 다른 기록은 없었다. 출생연도는 같았지만 김한슈라와 김분례가 동일인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발길을 돌려 육성촌으로 갔다. 육성촌은 증조부가 함경도 온성에서 이주했던 곳, 아버지의 고향. 마을묘지로 가서 조모 묘를 찾아봤다. 혹시나 해서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블라디보스크를 거쳐 하바롭스크로 가는 일정이 잡혀있다. 가는 길에 신한촌을 들렀다. 신한촌은 당시 최대의 한인 집단마을로 하룻밤사이에 많은 사람이 살육된 곳. 기념비만 서있을 뿐 한인들 흔적은 없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열차를 탔다. 아무르만을 지나 라즈돌노예역에 도착했다.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떠났던 통곡의 역. 화물열차 안에서 수없이 죽고, 허허벌판에 버려져 혹한과 기아로 또 수없이 죽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서 아버지는 몸이 편찮았던 조모를 홀로 남겨놓았다. 대책 없이 버려졌던 조모의 슬픈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열차는 우수리강을 따라갔다. ‘제야강을 건넜다면 우수리강도 건넜을 거야.’ 아버지의 말이 바람에 실려왔다. 자유시 참변을 생각하며 했던 말. 내부갈등으로 붉은 군대에 의해 독립군이 괴멸된 사건이다. 그 현장을 빠져나온 독립군도 대부분 제야강에서 숨졌다. 그 이후 독립군이었던 조부의 행적이 끊겼다. 아버지가 아내를 남겨두고 하얼빈으로 갔던 것도 조부 생사 확인 차였다. 거기서 확인한 것에 대해선 무슨 연유인지 침묵했다.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붉은 독립군과 그 만행을 숨기고 싶었을 것일까. 아버지는 반정부 활동에 빠져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주정과 폭언에 시달리며 나를 키워냈다. 역사의 질곡에 갇혀 엉거주춤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시립묘지로 가서 명단을 확인했지만 조부 이름은 없었다./ 우수리스크로 돌아왔다. 기록보관소에서 기록과 사진을 열람했다. 소득이 없었다. 아버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지를 주면서 첫 아내의 묘를 찾거든 돌려주라고 유언했다. 만주로 갈 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쓰려고 갖고 갔다고 했다. 고타냐 여인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허사였다. 수이펀 강가로 갔다. 강 위로 반지를 던졌다. 강물이 대신 반지를 돌려주기를 바라면서.…나라 잃은 백성의 아픈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무능한 황제와 썩어빠진 지배계급이 잘못해 나라를 빼앗겼지만 그로 인한 고초는 무고한 민초가 겪었다. 몽골의 침략으로 온갖 곤혹을 치르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철저하게 유린당해놓고도 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으니 안타깝고 비분강개할 일이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감정을 추스르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는 살얼음판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떠오른다.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