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선배나 동창생, 친지가 보험을 들라고 찾아오면 모면할 궁리부터 했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첫 달 보험료를 내고는 해약하는 이가 많았다. 격세지감이라더니 이제 보험회사 직원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멋장이 전문직업인이 되었고 사회적 지위도 많이 달라졌다. 보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변화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아마도 자동차 보험일 것이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 사고를 낸 운전자나 차주는 형사적? 민사적 책임은 물론 피해자 가족에게 이리 저리 시달리고 피해자가 입원한 병원에 가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 등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자동차 사고의 뒤처리는 보험회사가 도맡아 해 준다. 안전운전이 생활화되어 한번도 사고를 낸 일이 없는 사람도 자동차 보험에 드는 이유는 행여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보험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험료 내는 것이 우선은 아깝지만 보험에 들었다는 심리적 안정으로 사고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고가 났을 때는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남이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료를 내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조건 없이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상호간의 차이는 자동차보험은 민간보험이고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라는 것이다. 공? 사 보험은 다 같이 위험에 대한 공동적 안전장치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다. 우리는 노령, 질병, 실업, 사망 등 평탄한 생활을 저해하는 각종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국민의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이러한 각종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이른바 사회보장제도이다. 사회보장제도에는 사회보험, 공적부조, 사회복지서비스가 있고 사회보험은 연금보험,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으로 구분된다. 요즘 말이 많은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군인연금과 더불어 연금보험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1988년 국민연금제가 도입됨으로써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개보험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민연금은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합리적인 운용이 절대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사회보험제도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홍보를 게을리 한 탓으로 국민연금보험의 장점은 간 곳 없고 취약점만 들어나고 있다. 사회보험으로서의 국민연금이 일반 저축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지시키지 못한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보험료를 한달만 불입해도 장애연금,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므로 미래사고에 대한 보장성이 확보되는 셈이다. 보험의 원리에 따른다면 보장성이 부여되는 보험은 저축성이 결여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최근 일본 국회는 국민이 부담하는 연금 보험료는 올리고 수령액은 낮추는 연금개혁법안을 가결했다. 미래 연금기금 고갈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사회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역 가입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연금 불입액에 불합리한 점이 많고 국민연금이 세금과 같이 인식되고 있는 점, 국가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 국고를 축 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국민들이 국민연금 기금 운영에도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갖고 있는 점 등 이다. 이러한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보험제도 이므로 국가가 무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믿게 하고 노후문제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세태가 된 만큼 고령시대에 대비, 노후를 준비하는 최적의 수단으로는 국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제도 이상은 없다는 점을 설득시키고 홍보하는 길 밖에 없다. 아울러 국민연금보험과 같은 보장성급여는 은행의 저축과는 달리 위험보장과 저축을 겸한 제도로서 가입자가 납입한 부담금 중 일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다른 가입자에게 급여금으로 지급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주지시켜야 한다. 온 국민의 복지를 지향하는 사회보장제의 정착은 정말 어렵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에야 꽃피울 수 있다. 국민연금제는 노령사회의 버팀목이므로 반드시 큰 뿌리를 내려야 한다.
김진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