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hop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밝은 조명 아래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저마다 가장 자기다운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어떤 남자는 세련된 슈트를 입었고, 콤비 재킷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도 있었다. 캐주얼한 옷에 얼굴은 주먹만 하고 몸은 팔등신인 남자들 앞에는 어린 여자들이 몰려 있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눈에 전문직임을 알아볼 수 있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단정한 원피스 위에 앞치마를 두른 여자도 있고, 속이 훤히 보이는 슬립을 입고 노골적인 자세를 취한 여자도 있었다. 어쩌다 히잡을 쓴 여자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첫인상이랄 게 없이 오직 눈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속이 궁금했지만, 다시 돌아보진 않았다.「문장」(2024, 제68호) B-Shop으로 들어간 여자는 전시된 남자와 여자들을 계속해서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름표를 달고서 그녀를 바라본다. 근육질인 상체를 드러낸 채 청바지만 입고 있는 한 남자는, 심지어 여자가 무심을 가장하며 옆으로 지나가자”, “사선으로 파인 치골이 살짝 보이게 바지의 허리춤 한쪽을 슬쩍 내”리며 대놓고 유혹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쪽 취향”이 아닐뿐더러,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도 않다.여자가 밝은 조명 아래 자신을 뽐내고 있는 이들을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마음속엔 이미 ‘한 남자’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여자는 “몇 년 전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후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B-Shop을 둘러보던 여자는 마음에 둔 그 남자를 드디어 발견한다. 과연 그는 “요즘 유행하는 옷을 입고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여자는 서둘러 남자의 손을 잡아 일으킨 다음 곧바로 주인에게 데려가 값을 치른다. 남자와 함께 오후의 텅 빈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옷을 갈아입는다. 그에게 차를 대접하기에는 마음이 급하다. 그녀는 손을 깨끗이 씻고 핸드크림까지 꼼꼼히 바른 후, 다가가 그의 허리띠, 앗차! “허리에 두른 띠”를 벗기고 그를 연다.바지와 관련한 19禁 상상을 하느라 ‘허리에 두른 띠’를 그만 허리띠로 읽고 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자의 이름은 “파올로 코엘료”, 정확히 말해 그녀는 코엘료의 신간을 읽는 중이다. 그러니 B-Shop은 책방(bookshop)이다.「봄」은 수필이다. 수필이 글쓴이의 경험과 깨달음을 위주로 한다는 교과서적 상식에 충실한 독자라면, 미니픽션과도 같은 이 글이 다소 파격이었겠다. 진열된 책들을 사람처럼 묘사함으로써 SF적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책을 사기까지의 과정과 사고 난 후의 행동을 통해 서사의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 내용의 반전으로 허를 찌르며 종결하는 마무리는 탄성을 자아낸다. 겨우내 군내 나는 김치만 먹다 상큼한 봄나물 무침 한 상 잘 받은 느낌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