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대구 연호지구의 한 상가에서 연호이천 서편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향후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증거를 갖고 오라니 그렇게 해야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절대 반박 못 할 사진을 찍어가려고 합니다.”대구 수성구 연호이천 서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이춘원 총무는 최근 때 아닌 동물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수달 사진 한 장을 위해 며칠 밤을 개울가에서 잠복하는 것도 다반사란다. 연호 공공주택지구 환경영향평가 조작 의혹 등이 대두되면서 주민들이 확실한 증거 확보를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LH의 일방적인 사업 진행에 분개한 원주민 및 토지 소유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책위가 벌써 설립 3년째를 맞았다.설립 당시 400여 명에 이르렀던 회원은 지루한 보상 과정에 지친 주민들의 탈퇴가 이어지면서 현재 151명으로 줄었다. 이중 이씨처럼 적극적으로 모임과 집회까지 나서는 이는 20여 명 정도다.이들은 매일 지구 내 빈 상가에 모여 대책회의를 연다.그동안 대책위에서 개최한 집회는 50여 회에 달한다.청와대, 국회, 국토교통부, 대구시청, 수성구청, LH 본사 앞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연호지구 조성 과정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1인 시위의 경우 그 횟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을 정도란다.‘달걀로 바위 치기’라며 마음 편히 보상받으라는 유혹도 숱하게 받았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었다며 손가락질할 때도 그저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정부에 맞서는 자칫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것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LH의 독선과 오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여러 의혹이 터져 나오며 상황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대책위는 사비를 털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열린 1심에서 공익사업에 반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하지만 희망적인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최근 경기도 분당 서현지구에서 맹꽁이 존재 때문에 지구 취소소송에서 주민들이 승소하는 선례가 생겼다.이현자 감사는 “맹꽁이만으로도 지구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이곳은 맹꽁이는 천연기념물로도 안 쳐주는 분위기다. 수달, 구렁이, 황조롱이 등 멸종위기종이 지구에 수두룩하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말했다.대책위는 최근 전문적인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환경전문가 집단을 고용했다. 만만찮은 비용이 들었지만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대책위는 LH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반박자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정봉용 대책위원장은 “자연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원점으로 복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곳에는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며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