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4시 대구 동구 신천1·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는 수상한(?) 인기척이 감지됐다.전날부터 쏟아진 굵은 장대비를 헤치고 나온 10여 명의 여성은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센터에 모여들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물건을 내려놓더니 이내 칼을 들었다.이들의 정체는 바로 신천1·2동 새마을부녀회 회원들.그들이 들고 있던 것은 바로 생닭과 인삼, 환기, 대추 등 삼계탕 재료였다. 다가오는 초복(오는 11일)을 맞아 동네 어르신들께 보다 맛있는 삼계탕을 대접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 수고로움을 감수한 것이다.준비해야 할 삼계탕은 180인분. 7시간 가까이 푹 끓여낸 결과 점심 무렵에는 제법 걸쭉하고 뽀얀 국물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정성이 담긴 삼계탕은 개별 포장돼 지역 독거노인 및 취약계층에 전달됐다.신천1·2동 홍선미 새마을부녀회장은 “힘들었지만 맛있게 드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다함께 이겨냈으면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코로나19 4차 대유행 위기도 오고가는 나눔의 정은 막지 못했다.초복을 앞두고 대구 전역에선 크고 작은 삼계탕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대구 8개 구·군에 따르면 초복 관련 행사는 50여 개에 달한다.나눔의 총량은 줄지 않았지만, 그 형태는 바뀌었다.대규모 취식 행사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민들이 다 함께 모여 먹던 ‘동네잔치’의 느낌이었다면, 이젠 조리 후 개별 포장해 해당 가정에 배달한다.직접 얼굴을 맞대고 안부를 묻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오히려 주민 만족도는 높아졌다는 후문이다.기존 행사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어르신들에게는 불편한 자리였다. 행사에서 응당 주인 대접을 받아야 할 주민들이 지역 정치인들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도 흔했다.초복 등 특정 절기만 되면 손님맞이에 행정복지센터 업무가 마비되던 풍경도 사라졌다. 행사가 열리면 해당 동 소속 공무원들은 몰려드는 손님맞이와 설거지, 청소 등으로 정상적인 민원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실질적으로 수혜를 받는 이들도 늘어났다. 여러 사유로 센터를 방문하지 못해 수혜 대상에서 제외됐던 일부 취약계층에게 온전한 나눔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신천1·2동 주민 A씨는 “초복이 다가오는 지도 몰랐는데, 고마운 분들 덕분에 삼계탕을 챙겨 먹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배기철 동구청장은 “이웃을 위해 땀 흘려 봉사하는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나눔 문화 확산을 통해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