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으로 시끄럽다. 민주주의는 언로가 트여 말이 와글와글 해야 한다지만, 요즘 세태는 말이 거칠고 사납다 못해 가히 적대적이다. 말의 금을 벗어나고 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혼재돼 의미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네 관습 중에 금줄이란 게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쳐놓고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즉 사람들이 꺼리는 것을 피해 스스로 행동의 제한을 하는 것이다.말에도 금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말을 신중하게 하고 가려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줄은 무언의 약속이며,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다. 아무리 부자지간에도 금기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는 나이, 빈부, 벼슬의 높고 낮음, 신체적 결함 등 어떤 경우에도 말의 금줄은 있다.생각하건데 오늘날은 이러한 금줄은 사라지고 구획을 나누는 선(線)만 남아있다. 선은 금과 같은 줄이지만 의미의 차이는 매우 깊다. 선은 밖에 있어 쉽게 지워질 수 있지만 금은 마음에 있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할 때 그은 선은 승패에 따라 쉽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금을 그어놓고 넘지 말라고 하면 그것에는 강한 구속력이 있다.'선을 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선을 쉽게 넘나든다. 금과 선은 분명히 다르다. 오늘날은 금은 없고 선만 있다. 금이 아닌 선은 심리적 결기가 얕은 것이다.말에 금줄을 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 말하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배웠지만 침묵은 신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침묵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양식이며 최고의 언어이다. 일반적으로 아픔과 분노, 기쁨 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떠들기 시작한다. 그럴 경우에는 정신적 배설로 인해 기분전환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깊은 생각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깊은 생각은 소리치는 곳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어느 사회학자의 말에 대한 조사도 흥미롭다. 우리가 업무를 위한 말을 제외한 일상적인 말 중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 남을 비방하는 말, 감정이 과잉노출 된 말이 반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반을 버려도 좋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말에 금줄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정제되지 않은 말이 난무하는 오늘날에는 차라리 침묵이 그립다. 고려 말 나옹선사는 시(詩)를 통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후략- 라고 읊었다. 인도의 간디(Gandhi)도 월요일 하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침묵을 했다. 그는 문밖에서 아무리 급한 일로 야단을 쳐도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철저하게 말에 금줄을 친 것이다.올해는 따듯하고 인간미 넘치는 말을 듣고 싶다. 너무 살벌하거나 전투적인, 또는 조악한 은유로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말은 아예 금줄을 쳐 나오지 못했으면 한다. 그 빈 곳을 서로의 마음을 감싸주는 사랑의 말로 채워 넣었으면 한다.하청호 대구문학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