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모든 시민에게 ‘시민안전보험’ 지원

경산시가 시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해 이달부터 ‘경산시민안전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시가 시민안전보험의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 보험사와 직접 계약하는 만큼 주민등록을 둔 시민(등록외국인 포함)은 별도 절차 없이 자동 가입된다.주요 보장항목은 △폭발·화재·붕괴 상해 △대중교통 이용 중 상해 △전세버스 이용 중 상해 △농기계사고 상해 △스쿨존 교통사고 △감염병 등으로 인한 사망 및 후유장애(부상)이다.가입 기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최대 2천만 원까지 보장 받을 수 있다.보상을 받으려면 사고일로부터 3년 이내 피보험자 또는 법정상속인이 보험사에 청구하면 된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예기치 못한 재난이나 안전사고로 피해를 입은 시민이 보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민안전보험 등의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박준우 시시비비/ 대구백화점과 ‘빅3’ 백화점

박준우논설위원 겸 특집부장77년 역사의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1일부터 영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백화점 측은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업종전환하는 등 회생 방안을 찾을 거라 하지만 그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1944년 설립된 옛 대구상회 시절부터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나눠온 대구백화점의 퇴장 소식은 그래서 시민들에게 대구경제의 현주소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대구의 백화점이나 아파트 건설 시장이 외지 대기업에 넘어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변화 대응력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지역기업의 한계에다, 온라인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장환경, 그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탈지역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백화점 시장은 2003년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2011년 현대백화점, 2016년 신세계백화점까지 소위 국내 백화점 ‘빅3’가 모두 대구에 터를 잡으면서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앞서 동아백화점이 2010년 이랜드그룹에 매각되기도 했다.시민들과 지역경제계는 그동안 빅3의 시장 독점에 대해 우려가 컸다. 당장 지역민이 쓴 돈이 지역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외지로 유출되는 것의 부작용을 걱정했다. 향토 기업의 매출이 지역경제와의 상호부조라는 기대효과가 있는데 반해 외지 업체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이 때문에 외부에서라도 개입해 이들에게 지역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를 반영해 실제로 대구시는 빅3 대기업과 지역의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이 함께하는 상생발전협의회를 제도화하고, 나아가 이들의 현지 법인화도 추진했다.그 결과 가시적 결과물도 있었다. 매년 시가 이들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역기여도 평가를 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현대백화점이 용역과 인쇄 발주 100%, 사회 환원 기부액 26억8천만 원, 입점 175개, 공익활동 108회 등으로 베스트기업에 선정됐다. 이 정도라도 물론 적지 않은 지역 기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빅3가 지역에서 올리는 연 매출과 비교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2020년 국내 67개 백화점 점포들의 잠정 매출치 분석자료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이 연 매출 7천800여억 원으로 10위권에 올랐으며, 이보다 조금 뒤처져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20위권,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상인점이 각각 40위권에 올랐다. 또 이를 토대로 업계에서는 빅3의 2020년 대구 연 매출 규모가 최소 1조5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은 당연한 일이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도태되는 것도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지역민들은 그동안 지역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에 끊임없이 지역과의 상생·협력을 요구해왔고, 지방정부 역시 중앙정부에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추진을 주문했다.결국 한 출발선에 서서 같이 출발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서로 간에 있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서울·수도권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결과로 지금과 같이 지방이 어려워졌으니 이를 일정 부분 중앙정부와 수혜자들이 책임지라는 요구이기도 하다.지역 아파트 건설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구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가운데 현재 시공사가 결정된 데가 69곳인데, 이 가운데 지역 건설업체가 수주한 사업지는 8곳, 11.5% 남짓이라고 한다. 또 얼마 전 끝난 2021학년도 대학 신입생 모집에서는 대구·경북권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큰 곤욕을 치렀다. 일부 대학의 경우 정원에 수백 명이 미달하는 낭패를 겪었다.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원인 분석이 있지만, 그중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 학부모들의 성향이 영향을 끼쳤다는 대학가의 분석이나, 미래 재산가치 증식 측면에서 시장은 어쨌든 지명도 높은 유명 대형건설사를 더 선호한다는 업계의 지적은 아프게 와닿는다.지역기업이야 당연하고, 지방정부, 지역정치권도 이런 지적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당장은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지만 이게 정치, 사회 분야로까지 언제 번져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슈추적/ 호계서원과 병호시비 400년

퇴계 이황(1501~1570)의 수제자는 누구인가. 이는 1620년(광해군 12) 당시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학봉 김성일(1538~1593) 두 문중의 후손과 후학들에게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과 자긍이 걸린 문제였다.이황이 누구인가.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성리학을 체계화해 오늘날 ‘동방의 주자’라고까지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수석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바로 퇴계를 주향으로 모신 여강서원(훗날 호계서원)의 좌배향에 위패를 안치하는 것이었다.여기서 비롯된 서애 문중·후학들과 학봉 문중·후학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이 ‘병호시비’라 불리는 영남 유림의 400년에 걸친 논란이었다. 이 병호시비의 현장인 호계서원의 복설 고유제와 추향제가 지난달 20일 안동에서 봉행 됐다. 이날 행사에는 두 문중 사람들뿐 아니라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세 안동시장 등 영남지역 관계와 학계, 정계, 교육계 등을 망라해 각계 인사들도 참석했다.호계서원의 복원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인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400년을 이어온 병호시비의 마침표라는 의미, 즉 영남 유림의 두 기둥이랄 수 있는 서애와 학봉 두 문중의 화합의 자리라는 의미가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한 것이다.병호시비는 과학·기술 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사는 현대인들의 시각으로는 체면만 앞세운 고리타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집안 간 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선왕조 500년의 정치지도이념이자 사회개혁 및 국가운영의 기본이념이었던 성리학의 발전 과정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학문했던 조상들의 정신이 들어 있다.◆ 병호시비퇴계 이황은 마흔여섯 되던 해인 1546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에 돌아와 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그의 학문적 명성에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수많은 제자 중에 우뚝 솟은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이었다.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퇴계는 학봉을 보고 ‘이런 아이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했고 서애를 보고는 ‘하늘이 내린 아이’라 했다고 한다. 그만큼 학문이나 인품 등 어느 면으로나 쉬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그들이 뛰어났음을 스승인 퇴계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이런 그들인지라 1620년 퇴계 이황을 주향으로 모신 여강서원에 학봉과 서애를 함께 배향하기로 한 것은 어쩌면 그 결정 자체에 이미 좌배향의 서열 다툼이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두 가문의 후학들은 당시 나름의 이유를 들어 상대 문중에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서애 측은 관직의 서열을, 학봉 측은 나이를 기준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학봉은 나이로는 서애보다 네 살 위이고 퇴계 문하에도 먼저 들어간 입제자였다. 그러나 벼슬이 관찰사에 머물러 영의정을 지낸 서애보다 낮았다.결국 논란은 있었지만 학봉을 좌배향, 서애를 우배향하는 것으로 시비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에 순순히 승복할 수 없었던 서애 문중에서는 그 당시 관직에서 물러나 상주에 내려와 있던 영남 유림의 거두 우복 정경세(1563~1633)를 중심으로 ‘서애가 좌배향돼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1805년에는 영남 유림이 서울 문묘에 김성일, 류성룡과 함께 한강 정구(1543~1620), 여헌 장현광(1554~1637) 네 분을 종사하게 해달라고 상소를 올리게 됐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누구를 앞에 적느냐를 두고 문제가 생겼다. 나이순으로 학봉이 앞에 적히자 이에 반발한 서애 쪽에서 따로 상소를 올렸고, 일이 시끄러워지자 조정에서는 아예 이 사안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이때 억울하게 문묘 종사의 길이 막혀버린 정구와 장현광의 제자들이 따로 두 분을 대구 이강서원에 모시는 것으로 결정하자 안동 유림은 이를 규탄하는 통문을 썼다. 그런데 통문에서 학봉이 앞에 나오자 서애 쪽에서 이를 다시 문제 삼는다. 200여 년에 걸쳐 이렇게 세 번이나 서열이 문제가 되자 서애파는 호계서원과 결별하게 된다. 그 결과 이황은 도산서원에, 학봉은 임천서원에, 서애는 병산서원에 따로 모셔진다.이런 두 문중의 수백 년에 걸친 다툼을 두고 병산서원과 호계서원 사이의 시비라 해서 ‘병호시비’라 불렀고, 또 병산서원과 호계서원의 앞 글자를 따 서애 후학들은 ‘병파’, 학봉 후학들은 ‘호파’라 했다.후손과 후학들은 이렇게 대립했지만, 사실 서애와 학봉은 요즘 말로 하면 절친이었다. 퇴계 문하에서 동문수학했고 왜국에 통신사로도 함께 다녀온 사이였다. 학봉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방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 1593년 진주성에서 전사했다. 안동 유림에서는 퇴계의 수제자이자 학맥을 이은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서애 류성룡은 25세에 벼슬길에 나가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임진왜란 중인 51세 때 영의정에 오른다. 그러나 무고로 관직에서 물러나 1599년 나이 58세에 고향 하회마을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다 1607년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400년 병호시비의 끝(?)서애 문중과 학봉 문중이 화해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2009년이었다. 당시 서애 종가의 종손과 학봉 종가의 종손이 만나 퇴계를 중심으로 서애는 좌배향, 학봉은 우배향하기로 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안동시와 경북도에서도 호계서원의 복원 계획을 세운다.그러나 다툼의 세월이 오래였던 만큼 두 문중 간 합의 소식에 여기저기서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퇴계 문중의 후손과 후학들은 ‘병호시비는 단순히 양 문중 간 서열을 따지기 위한 갈등이 아니다. 당대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안동지역 두 거목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이 함께 담겨 있는 문제로 긍정적 시비는 계속 이어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몇몇 특정 가문이 나서 배향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양 문중의 배향 합의와 더불어 전국 유림의 뜻을 받들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013년 5월에는 ‘호계서원 복설 추진 확약식’이 경북도청에서 열렸다. 이날 확약식에서는 또 학봉 문중의 의견을 반영해 대산 이상정(1710~1781)을 추가로 호계서원에 우배향 추정하기로 결의했다.대산 이상정은 1711년(숙종 37) 안동에서 태어나 퇴계학파의 학통을 이었다. 25세 때 벼슬길에 나가지만 당시 영남 남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젊어서부터 안동에 대산서당을 짓고 퇴계의 학통을 계승해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쏟는다. 31세 때 퇴계가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아 저술한 ‘퇴계서절요’는 퇴계학의 핵심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2014년에는 복원하는 호계서원의 위치가 문제가 됐다. 처음 정한 위치가 안동댐 인근 민속촌이었는데, 이 장소가 너무 좁다는 의견이 있어 나중에 한국국학진흥원 내 부지로 위치를 변경한 것을 두고 반대 의견이 나온 것이다. 일부 유림에서 ‘호계서원과 도산서원은 각각 안동과 예안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었기 때문에 복설 장소는 당연히 당초 위치나 그 주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계서원호계서원은 1573년(선조 6) 퇴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영남 유림이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처음에는 여강서원이란 이름으로 건립해, 퇴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1620년(광해군 12)에는 학봉과 서애의 위패가 이곳에 배향되고, 1676년(숙종 2)에 임금으로부터 ‘호계’라는 이름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이때부터 사액서원이 됐다.그러나 좌배향을 둘러싼 두 문중 간의 서열 다툼이 계속되자, 결국 1805년에는 퇴계와 학봉, 서애의 위패를 제자들이 각각 다른 서원으로 모셔가고, 모실 분이 없게 된 호계서원에는 강당만 남게 된다.그 후 고종 때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71년)에 따라 전국의 서원이 훼철되는 가운데 호계서원도 그 불운을 피해 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7년 뒤에 강당은 새로 지어진다. 명맥을 이어오던 호계서원은 그러나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가 되면서 임하댐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사회현상된 마스크 시비…관련 법규 미비해 논란만 가중

지난 1일 오전 8시께 대구도시철도 1호선 칠성시장역에서는 이용객들 간 이른바 ‘턱스크’를 둘러싼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열차에 탑승 중이던 40대 남성 A씨가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전화통화를 하자 같은 칸 승객이던 50대 남성 B씨가 항의했으며 곧바로 언성이 높아지며 다툼이 벌어졌다. 이들의 다툼은 몸싸움 직전까지 이르렀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고 나서야 소동은 진정됐다.마스크 뜨거운 ‘설전’은 SNS 등을 통해 전국에 퍼져나갔고, 네티즌들은 ‘턱스크 빌런이 대구에도 출몰했다’, ‘중국인 줄 알았다’며 우려했다.지난 5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이 내려졌지만, 다섯 달이 지난 현재도 마스크 미착용으로 인한 혼란은 여전하다.마스크 시비는 어느새 사회현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 및 관련 법안들은 유명무실한 수준이라 사실상 단속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8일 대구시에 따르면 5~8월까지 접수된 대중교통 마스크 관련 민원신고는 모두 1천322건이다. 하루 평균 11건 가량이 발생한 셈이다.이중 도시철도에 접수된 신고는 모두 1천248건이었으며, 시내버스 관련 민원은 74건이었다.시내버스의 경우 온라인 민원만 통계에 포함돼 실제 민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들 시비의 대부분은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계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1천322건의 신고 중 경찰에 입건된 경우는 11건에 불과했다. 과태료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0건이다.대구도시철도와 시내버스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여객운송약관에 넣어놓고 이용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승차를 제한하고 있다.법적 근거가 없어 해당 행위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다른 제재수단은 없다.대구시는 지난 5월 당시 전국 지자체 최초로 대중교통 등 공공시설 마스크 미착용 시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을 꺼냈다가 권위주의적 행정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정부는 나날이 증가하는 마스크 관련 시비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달 13일부터 대중교통 등 공공시설 내 마스크 미착용 시 최대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총장자리 주차 시비…또 다른 갑질로 비친다

대구 달서구 한 대학 관계자의 ‘갑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학에서 국가자격시험을 치던 수험생을 시험 도중 호명해 총장 전용구역에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켜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시각을 다투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시험과 관련 없는 일로 수험생을 호출하면 안된다. 그것이 상식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이 아직 전국민의 기억에 생생하다. 유형은 다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지난 17일 2020년 상시 기능사(미용사) 실기 시험을 치던 수험생 B씨의 이름을 감독관이 난데없이 불렀다. 감독관은 “대학 총장 자리에 주차하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가서 차 빼세요”라고 했다고 수험생의 헤어모델 A씨가 주장했다. 이날 A씨와 B씨는 수험장에 도착한 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때마침 비어있는 자리에 주차하고 입실했다. 시험이 시작된 지 1시간도 안돼 B씨의 이름이 호명돼 A씨가 대신 차를 이동시키러 나갔다. 그러자 대학 관계자가 총장 자리에 마음대로 주차한 것에 사과를 요구하며 A씨의 차를 다른 차로 가로 막았다. A씨는 대학 관계자가 차문을 열고 자신을 강압적으로 끌어내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손목 등에 전치 2주 가량의 상해를 입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주차와 관련된 시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험을 치고 있는 수험생을 불러내 차를 이동시켜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 수험생의 입장을 전혀 배려않은 전형적 갑의 태도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관리공단 측은 수험생 확인 당시를 제외하고는 시험 도중 이름을 호명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어모델이 시험 중 차를 이동시킨 것에 미뤄보면 어떤 형태로든 수험생에게 황당한 요구를 한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기관장 전용주차 자리가 필요할 수 있다. 그 자리가 항상 비워져 있어야 한다면 다른 차량이 주차할 수 없도록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총장 차량을 주차하기 위해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하더라도 이번과 같이 국가 자격시험을 치는 도중에 차를 이동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수험생이 전용 주차구역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차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험 끝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는 미덕을 발휘할 수 없었는지 아쉽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가르쳐야 할 대학에서 자신들의 권리만 앞세우는 듯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 일과 관련해 대학 측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이런 일이 더 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또 거주인 폭행’ 경주 혜강행복한집 논란

경주 사회복지시설 혜강행복한집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인권유린 문제와 관련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설 내 폭행사건이 또 불거졌기 때문이다.경주학부모연대와 민주노총경주지부 등 1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이하 장공단)은 16일 경주시청에서 반복되는 혜강행복한집 폭행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장공단은 이날 “혜강행복한집에서 폭행사건 등으로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폭행사건이 벌어졌다”며 “경주시는 시설을 즉각 폐쇄하고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북장애인부모회 배예경 회장은 “지난해 폭행 가해자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가해자를 피해자와 거주층만 달리해 근무하도록 해 제2차 폭행사건이 벌어졌다”며 “혜강행복한집은 피해자를 고통으로 내 모는 폭력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장공단은 “경주시가 사법처리 결과를 보고 조치하겠다며 수수방관하는 동안 고통 받는 사람들은 결국 거주인과 공익제보자”라며 “거주인들이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현장을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또 “거주인을 그대로 학대공간에 머물도록 해 제2차 폭행사건이 발생하게 한 1차적 책임은 경주시에 있다”고 밝히고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하고, 가해자 전원을 엄중 조치할 것과 피해자의 안정과 회복을 위한 지원을 책임 있게 추진하라”고 주문했다.장공단은 “혜강행복한집의 임원 전원을 해임하고, 혜강행복한집을 폐쇄 조치하고, 거주자들에 대한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계획을 즉각 수립하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공무원은 “지난해 사건에 대해서는 개선명령과 시설장 교체 등의 행정처분을 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혜강행복의집에는 사회복지사 등 종사자 18명, 거주 장애인 26명 등이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