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올라도 종전 가격 고집…딸기왕자의 의리가 윈윈 전략||우리가 먹는 딸기는 프랑스 스파

▲ 손진수 대표와 손 대표의 어머니가 딸기 적화(꽃솎기)작업을 하고 있다.
▲ 손진수 대표와 손 대표의 어머니가 딸기 적화(꽃솎기)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전향(轉向)이라고 한다. 정치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사회 전반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스포츠에서 포지션을 바꾸는 것도 전향이라고 한다.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것도, 팬들이 좋아하던 스타를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향과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유혹하는 딸기도 전향의 산물이라고 한다.

1712년 남미 칠레 해안을 뒤지고 다니는 식물학자가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야생딸기를 관찰하고 채집했다.

수첩에는 칠레의 긴 해안을 따라 분포된 딸기에 대한 기록이 숫자와 부호, 그림으로 빼곡했다.

그러나 그는 식물학자가 아니라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 중령인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어’였다.

당시 칠레를 통치하던 스페인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였다.

수첩에 적힌 기록들은 암호화된 군사정보였다.

2년 만에 귀국한 프레지어는 루이 14세로부터 금화 1천 냥을 정보활동의 포상금으로 받고, 삶의 방향을 바꿨다.

군인에서 식물학자로 전향한 것이다.

칠레에서 가져온 야생 딸기를 연구하고 책까지 출판한다.

이것은 유럽에서 관상용이었던 딸기가 식용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1764년에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칠레 딸기와 북미 버지니아 딸기를 교배해 오늘날의 딸기를 만들어 냈다. 대량 재배는 1806년께부터 이뤄졌다.

이처럼 딸기의 역사는 200년 정도로 짧지만 맛과 향을 무기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안동에서 2대가 10년 간격으로 연달아 귀농해 딸기를 재배하는 으뜸딸기농원의 손진수(35) 대표를 만났다. 손 대표는 아버지인 손기봉(58)씨, 어머니인 최화연(56)씨와 함께 4천㎡의 하우스에서 고설양액재배방식으로 딸기를 재배해 연간 1억3천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 손진수 대표가 잘 익은 딸기를 보여주고 있다.
▲ 손진수 대표가 잘 익은 딸기를 보여주고 있다.
◆2대 연속 귀농

손 대표는 대전의 의료기기 전문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7년 귀농했다. 그의 귀농은 10년 전 고향으로 귀농한 부모님과 연결돼 있다.

부모님은 경남 양산에서 농산물 유통업을 운영했다.

2008년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겪자 유통업을 청산하고 귀농했다. 이후 안정적인 작목을 물색하다가 2014년부터 딸기 재배를 시작했다.

손 대표는 좀 더 조건이 좋은 직장을 보장 받았지만, 부모님의 농사를 돕기 위해 귀농을 선택했다.

힘들게 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농촌에서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촌에도 자신의 미래를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본 것이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교육이었다.

부족한 영농기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최고라고 확신한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와 농업기술원 등 농업전문기관을 찾아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딸기재배는 물론 강소농, 6차산업, 전자상거래, 마케팅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매년 50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교육으로 기술을 익히고, 농장의 문제점을 개선하며 전문 농업인의 자리로 한발씩 다가서는 것이다.

부모님의 교육 열기도 만만찮다.

딸기 교육이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손 대표 가족의 교육시간은 연간 800시간이 넘는다.

“아직 초보지만 배운 기술들을 농장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며 “교육이 반드시 소중한 자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손 대표는 말한다.



▲ 수확해 상자에 담은 딸기.
▲ 수확해 상자에 담은 딸기.
◆기본을 지키는 딸기재배

손 대표는 “특히 고설양액 재배를 하는 딸기는 한번 실패하면 대체할 작물이 없다”며 기본을 지키는 재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성공도 좋지만 실패가 없는 것을 우선한다는 의미다.

양액 재배를 하는 만큼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수질 검사다.

해마다 농장의 지하수를 채수해 전문기관에 수질검사를 의뢰하며 물의 성분이 딸기 재배에 적합한지 검토한다.

부족한 성분을 보충하는 과정에 길항 작용의 여부도 점검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자신의 농장에 맞는 맞춤형 양액을 직접 제조한다.

또 딸기의 생육시기에 따라 양액의 성분비율을 다르게 한다.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 인증을 받은 것도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딸기를 공급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본 매뉴얼에 따른 재배로 안전성도 확보하고 품질의 신뢰도도 높이는 이중의 효과를 얻는다.

재배 과정에 새로운 품종과 재배 기술을 도입할 경우에는 모든 가족이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결정한다. 이것도 실패를 줄이는 안전장치다.

농장 한편에서 ‘이리응애’를 활용한 천적재배를 시도하는 것도 안전한 농사를 위한 새로운 시범 사업이라고 한다.

흔히 딸기 재배는 장거리 경주인 마라톤과 비유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작물들이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과는 달리 모종 생산에서부터 수확까지 15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3월에 모주를 심고, 6월에 삽목을 거쳐 육묘와 정식과정을 거치면 11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수확한다.

한 번의 작기가 15개월 이상 걸리는 장기 레이스이다.

손 대표도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기술을 익히고, 고품질 딸기 생산을 위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한다.



▲ 잘 익어가고 있는 딸기.
▲ 잘 익어가고 있는 딸기.
◆가격 동결과 번개 배달

손 대표의 경영목표는 상생이다.

이웃에서부터 체험객, 납품처 등 모두와의 상생이다.

가격 동결이 대표적인 상생 사례다. 지난해 10월의 고온과 12월의 한파 영향으로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수확량의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지만, 손 대표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주요 납품처인 카페와 제과점 등에도 종전 가격으로 공급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함께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주요 납품처인 카페 등 사업장이 살아야 농장도 산다는 생각에서다.

“당분간 딸기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가격을 올릴 계획은 없다”며 “가격 인상을 통한 단기적인 이익보다 상생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손 대표는 강조했다.

가격을 동결한다고 해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전에는 정해진 코스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공급하지만, 오후 시간의 추가 주문은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배달하는 번개배달을 한다.

가장 신선한 상태의 딸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모든 납품처가 손 대표 농장의 홍보대사로 나서고 있다. 농장과 소비자가 동반성장하는 상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나눔으로 행복한 세상

그는 2017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딸기 무료체험을 이어오고 있다.

어린이가 딸기를 마음껏 따먹고 한 상자씩 선물로 가져간다. 딸기 재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농산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적 효과도 거둔다.

매년 140명 정도의 어린이를 초청한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체험을 하자는 어머니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무료체험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지자 인근의 무릉정미소(대표 박성민)가 어린이들에게 쌀 한 봉지(1㎏)를 선물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풍선아티스트도 풍선으로 체험장을 장식하고 풍선을 선물했다.

이처럼 무료 딸기체험을 하는 날이면 농장은 축제장으로 바뀐다.

인근 지역 농협에서도 무료체험행사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지난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이스라엘에서 귀국한 성지순례단이 인근의 수련원에서 자발적 격리에 들어갔을 때는 딸기 23상자를 전달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도시와 농촌의 소통 공간이 목표

손 대표는 도시와 농촌, 기성세대와 젊은이가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농촌의 고령화로 빈집과 은퇴농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빈집을 활용해 도농이 만나고 소통하는 만남의 광장을 만드는 것이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과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에게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시민에게는 5도2촌의 전원생활 공간이 되고 청년에게는 창농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을 누구에게는 힐링, 누구에게는 희망을 키우는 삶의 현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마을과 들판, 산과 강에 스며있는 스토리도 발굴해 지역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겠다는 생각이다.

손 대표는 “소통 공간은 청년에게는 귀농을 지원하고, 은퇴농에게는 소득을 보장해 주는 기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지역 활동가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농장명: 으뜸딸기농원

▲대 표: 손진수(딸기왕자)

▲구입문의: 010-4525-1203

▲인스타그램: mrsonstar

▲소재지: 경북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203-1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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