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레드 라인(Red Line). 대북정책에서 포용정책을 봉쇄정책으로 바꾸는 기준선이다. 북한과의 포괄협상을 1단계로 시도하지만 이것이 실패할 경우에는 2단계 봉쇄정책으로 전환을 검토해야 하며, 이때 정책전환을 위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 바로 레드라인이다.

요즘 북한이 이 선을 살짝살짝 넘고 있다. 2018년 이후 중단했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재개를 검토하겠다며 위협하면서다. 북한은 최근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새해 들어 벌써 네 번째다.

ICBM과 핵 실험이라는 레드 라인을 밟고 있는 북한은 이 전략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기준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여전히 억지 논리를 펼 듯하다. 북한의 경우에야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수시로 넘기도 하지만 외교든, 또 국제 무역이든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좁게 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도 기준선은 다 정해져 있다. 법으로 정해 놓은 선도 있고, 법적 책임은 벗어나더라도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눈에 보이지 않은 기준도 많다. 다만 아직도 이 선을 수시로 넘는 경우가 곳곳에 남아있지만 말이다.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16일째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이번에도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후진국형 사고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 역시 제대로 선(線)을 지키지 않은 탓이다. 사회가 유지돼 나가는 것은 정해진 선이 있어서다.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세상이 돌아간다. 이 선을 지키지 않으면 탈선이다.

이번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도 탈선에서 비롯됐다. 설계변경 승인 없이 무단으로 기둥 숫자를 줄여 골조공사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콘크리트 타설도 승인받은 설계대로 하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하중을 견디는 동바리 설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곰곰이 따져 보자. 우리 사회에서 선을 넘은 게 이 뿐인가. 툭 하면 세금을 떼먹으려 회계장부를 이중으로 작성하고, 사립학교와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여전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해 자기들 배를 불리기 바쁘다. 경기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에선 자본금 3억5천만 원으로 4천억 원의 배당을 받고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에서 대리 직급으로 근무하다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기도 한다. 이곳에서 회사 보유분 아파트를 분양 받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은 이 선을 넘는 것을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론 이런 탈선을 자랑삼아 떠벌리기도 한다. 이젠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선을 벗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무덤덤해졌다. 선을 지키는 나만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절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나드는 건 대부분 힘을 가진 자들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권력을 잡기 위해, 또 품 안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을 넘는다. 탈선이 명확한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늘어놓다가 불리해지면 그나마 입을 닫아버린다. 그들이 이득을 취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권력자는 없다. 아무도 기준선을 지키는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 힘을 가진 권력자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요즘은 말 때문에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가족 사이에서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말을 할 때도 엄연히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남의 집안 이야기를 할 때도 더 이상 넘지 말아야 할 기준이 있다.

이런 기준마저도 맥없이 허물어지는 현장을 자주 본다. 대선판이다. 아무리 이번 대선은 죽고살기로 임하는 선거라 하더라도 최소한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상대를 비판하더라도 적정 선이 있으며, 아무리 표가 눈에 보이더라도 공약은 신중해야 한다. 최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 기준선을 밟는 경우가 잦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다. 이 기준선을 넘는 건 폭력이다. 자유의 탈을 쓴 폭력을 멈추길 기대해본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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