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로 좌골이 쿡쿡 쑤시고/ 종아리는 감각이 없고/ 발바닥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고통에/ 삶이 완전히 절벽이 되었다// 절벽을 무너뜨리려고 신천으로 갔다/ 신천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절벽들이 삐거덕거리며 걷고 있다// 삼십대의 시퍼런 청춘은/ 왼다리를 질질 끌고/ 십 미터를 겨우겨우 걸어가는/ 저 절벽은 얼마나 높을까?// 사십대 젊은이는/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전동차에 누워서 가는/ 저 절벽은 또 얼마나 까마득할까?// 초등학생 같은 노부부/ 꼬부라진 허리로 바람에 날릴 듯/ 가벼운 몸을 서로 기대어/ 나란히 손잡고 비틀비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걸어가는/ 저 발걸음은 피눈물 나는 절벽을/ 얼마나 많이 짊어지고 가는가// 저마다 높이가 다른 절벽을 짊어지고/ 신천의 물처럼 푸른 바다를 그리며/ 피 멍든 한을 가슴 깊이 꾹꾹 절여 넣고/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하늘이 시리게 푸른 까닭」 (시와반시, 2022)

절벽이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수직 바위벽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가파르게 떨어지는 낭떠러지를 지칭하기도 한다. 같은 대상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정반대로 변한다. 절벽 아래에서 보면 수직으로 솟아오른 바위 장벽이고 절벽 위에서 보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벼랑이다. 시 ‘절벽을 읽는다’의 절벽은 수직으로 솟아올라 삶을 막아선 장애물이다.

허리디스크는 허리 부위 추간판의 일부가 탈출한 추간판 탈출증으로 좌골신경통과 종아리 마비 및 발바닥 통증 등을 유발한다. 하반신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거나 쥐가 발생한 한 듯 저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척추를 지나는 신경 줄을 건드린 탓이다. 많이 튀어나올수록 통증과 마비도 그에 비례해 커지고 그 척추 번호가 높을수록 그 아픈 부위는 낮아진다.

허리디스크는 겉은 멀쩡하지만 신경계 질환의 특성상 고통은 깊고 날카롭다. 의심이 발동하면 마치 꾀병처럼 보인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 터라 통증의 존재 자체가 놀랍고 무섭다. 언뜻 보기에 이상이 없는 상황에서 참기 힘든 신경의 몽니가 지속된다면 절망감과 공포감마저 엄습한다. 허리디스크는 삶을 절벽으로 에워싸는 장애물이다. 장애물을 만나면 일단 극복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막다른 골목에 선 생명에 대한 애착은 의외로 질기다.

수술이나 약물 치료도 있지만 우선 물리적 치유를 시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손쉬운 방법이 매력적이고 그에 끌리는 법이다. 시인은 신천에 나가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걷기는 부작용이 없고 부담도 없다. 아무쪼록 허리디스크가 낫기를 바라면서 신천을 걷는다. 신천엔 삶의 절벽에 맞닥트린 사람들로 붐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보인다. 한쪽 다리가 마비된 사람, 제 발로 걷지 못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 세월에 치인 노부부 등도 삶의 절벽을 만난 듯 신천을 걷는다.

삶을 살다 보면 높고 낮은 다양한 각종 절벽에 가로막히게 된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다. 시련과 고난의 절벽은 수시로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지만 인간은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도전하는 가운데 삶의 참모습이 시현된다. 인생은 생로병사의 고해라지만 삶의 항해는 계속된다. 절벽을 읽은 삶은 절벽을 극복하고 만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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