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대기업의 임원 인사에서 청년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이라는 삼성에서도 30대 상무와 40대 부사장이 나왔다. 정치권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온통 청년을 무차별하게 내세우는 판이다.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방년 16세에 등교거부를 이끌며 환경운동가로 부상한 스웨덴 소녀 툰베리는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39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청년은 청춘기의 젊은이다.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떠오른다. 힘차고 리듬감 있는 명문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에 적극 공감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피 끓는 청춘의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차다든지, 청춘의 뜨거운 피는 사랑과 이상의 꽃을 피우고 청춘의 동산엔 열락의 새가 노래한다든지, 청춘은 동토를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이라든지. 기타 등등…. 아직도 그 감동의 잔상이 생생하다. 어쨌든 청춘이 인생의 황금기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청년은 기존의 낡은 제도와 고루한 관행을 탈피하고자 몸부림친다. 때 묻지 않은 도전정신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고 팔을 걷어붙인다. 자유로운 영혼과 신선한 사고로 인류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은 그냥 놔둬도 그 자체가 사랑이고 아름다움이며, 또 문학이고 예술이다. 어둠에 휩싸여 있어도 스스로 발광하는 금강석이다. 누구나 청년을 예찬하고 부러워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아무리 빛나는 청년이라 할지라도 두루 갖춘 완전체는 아니다. 경륜에서 얻어지는 지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잉태되는 원숙함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월의 담금질 속에서 탄탄해지는 통찰력과 직관을 애써 외면하거나 받아들이는데 다소 인색하다. 이에 따라 종합적인 지적 작용인 판단력이 상대적으로 미진하고, 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청춘의 뒷모습은 뾰족한 미완의 가능성으로 숙성과 가공을 기다리는 원광석인 셈이다. 청년은 거기까지다.

예로부터 소년등과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생악재라 경계했다. 성장 과정에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이른 성공에 도취돼 오만하고 교만해져서 자기계발과 지식충전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점, 너무 성급한 점,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점이 위험요소다. 화려한 청년을 시기질투하거나 미숙한 청년을 비하하자는 의도는 결단코 없다. 청년을 탐해 섣불리 수확을 취하려는 조급함을 경계하고 그 꿈과 희망이 여물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자는 취지다.

어떤 제품에 수명주기가 있듯이 인생살이에도 라이프사이클이 있다. 인생의 각 시기에 그에 맞는 일이나 역할이 있는 법이다. 역동적인 힘과 자유분방한 창의, 뛰어난 두뇌활동을 바탕으로 하는 과업이나 기능을 수행할 때 청년은 가장 빛난다. 지휘·감독하는 일은 청년의 특질이 무색해지고 뾰족한 면이 둥글둥글하게 닿아 무뎌졌을 때 맡아도 늦지 않다. 한창 실무에서 능력을 발휘할 시기에 성급하게 리더 자리에 앉는다면 그 출중한 능력만 사장시키고 실패할 개연성이 크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청년의 특질과 맞지 않는다. 원숙한 지혜와 종합적인 경륜을 바탕으로 다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정치에 적합하다.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후라면 누구라도 도전해볼 만하다. 현실적으로 청년은 정치판과 궁합이 안 맞는다. 청년은 결혼하고 자식을 양육하며 생활을 영위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고용이 보장되고 일한만큼 대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가도 필연적이다. 정치는 돈 버는 직업도 아니고 프라이버시도 없으며 여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치판은 청년에겐 꽝이다.

실제 정치권에 들어왔다가 낙선이란 장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진 아까운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근 사람은 다른 곳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청년을 등 떠밀어 등판시켜선 안 된다. 다만 청년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일은 별개다. 청년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은 필요하다. 청년을 정치판에 내몰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몰라’라 하지 않을까, 그게 두렵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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