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속살들은/ 부드럽고 연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은/ 가시의 자존심으로 하여/ 미소가 아름답다.// 우린 각각이/ 목숨 걸고 소유를 만들려고/ 피 말리는 투쟁으로/ 무엇들을 주워 모으려고/ 끝없는 몸부림의 파도라는 욕심인데/ 잊어버리기 위해/ 버리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도/ 연하디연한 양심을 가지고/ 정의의 가시를 가진 자들이/ 얼마만큼의 대가를 받고 있을까?//세찬 파도를 헤집고/ 돌아오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새 메마른 입술로/ 그것/ 돈을 외치면서 부르는 연가들인 것을….// 선인장의 자존심은/ 접근 금지와 사랑의 진실/ 자신을 지키는 가시의 미소/ 마음 작은 우리들아/ 어디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일일문학」 (일일문학회, 2021)

선인장의 외피는 수많은 가시로 뒤덮여있다. 가시는 극한상황 속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고 생명을 거부하는 사막과 황무지에 응전한 진화의 결과다. 불타오르는 태양으로부터 소중한 수분을 지켜내기 위한 자기 방어적 선택이고 외부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의 발현이다. 부드럽고 연한 속살과 맑고 청량한 체액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 변형으로 선인장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힘센 자만 살아남는 세상은 살벌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상적이다. 설상가상 인간은 과욕을 버리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은 모순투성이고 세상은 부조리하다.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험한 세파에 시달려 기진맥진한 사람들마저 황금에 눈이 멀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으는데 혈안이 돼 있지만 허기만 더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인장의 존재는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선인장의 가시가 내보이는 것은 소중한 생명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만지거나 해코지하지 말라는 신호이자 당부다. 뜨거운 열사의 사막과 황량한 황무지에서 선인장은 목마름과 더위를 삼키고 가시를 돋운 채 꿋꿋이 서있다. 그런 결연한 모습에서 시인은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읽는다. 부처가 가섭에게서 찾은 염화미소에 다름 아니다.

염화미소는 말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불교 선종의 상징적인 소통방식이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중생에게 보이자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모두 침묵했으나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보인 것이 ‘염화’, 가섭이 그것을 보고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 ‘미소’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불립문자 설법을 과감히 채택함으로써 문자를 익히지 못한 수많은 중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염화미소는 불교를 대중적인 종교로 뿌리내리게 한 일등 공신이다.

선인장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까닭에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사귀의 표면적을 최소화한 선택 결과다. 만지거나 해하려 하면 찌른다. 선인장의 가시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이 일반적 이성적 시각이다. 허나 시인은 선인장과 불립문자 소통을 시도한다. 뜻이 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소통하지 못할 것은 없다. 선인장의 가시가 갖는 상징성을 곰곰이 곱씹어본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