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인문주간과 동의보감

발행일 2021-10-25 13:56:5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만 2년째 세계적 대유행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다음달 단계적 일상회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10월 마지막 한 주 동안 ‘2021 인문주간’이 진행된다. ‘코로나 시대, 인문학의 길- 일상의 회복’이란 인문주간 구호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현재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상회복을 앞둔 시민들이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한편, 인문 역량도 높이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2006년 시작된 인문주간은 매년 가을의 한 주를 정해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지역 대학과 지자체의 네트워킹을 통해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접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인문 자산을 발굴해 대중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는 25일부터 31일까지 제16회 인문주간에 맞춰 전국 33개 대학이 지자체와 함께 230여 개의 인문학 행사를 마련한다.

대구에서는 대구한의대와 수성구가 ‘한의학을 품은 인문향기도시 수성x경산, 치유 희망을 열다’란 슬로건을 내걸고 대구한의대 한학촌, 수성구립도서관인 용학도서관과 고산도서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대구근대골목, 팔공산에서 시민들과 함께 치유와 희망에 대한 인문 이야기를 나눈다. 전통 깊은 약령시가 있는 대구의 지리적 특성을 담아내는 토크콘서트, 강연, 전시, 체험, 탑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의학 관련 기획으로는 ‘문명과 질병: 치유의 인문학’이란 주제로 대구한의대 송지청 교수가 26일 용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한다. 이어 28일에는 ‘동의보감, 양생(養生)의 활자를 새기다’란 주제로 대장경문화학교 안준영 대표와 이산책판박물관 안정주 기획실장이 용학도서관에서 강연과 체험을 진행한다. 이어 11월10일에는 ‘조선 왕실의 치유를 체험하다’란 주제로 동의한방촌, 동화사 등지에서 답사가 진행된다.

이 가운데 한의학을 대표하는 기록물인 동의보감이 소환된 점이 눈에 띈다.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국보 제319호이자,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선조의 명에 의해 편찬이 시작된 동의보감은 중국과 조선의 의학서를 모아 1610년(광해군 3년) 집필이 완성됐으며, 3년 뒤 내의원에서 목활자(木活字)로 간행됐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는 중국의 반대가 컸다. 사실 의학서의 절대량으로 보면 중국이 조선보다 훨씬 많으나 체계적인 분류와 관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으며, 기록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소홀했던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의보감은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대구에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약령시가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601년 대구에 자리 잡은 경상감영에서 목활자로 간행된 동의보감을 목판에 다시 새겨 영남 전역에 대량으로 배포했다. 목판에 다시 새긴 이유는 당시 목활자가 많은 책을 찍어내기에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동의보감은 17~19세기 경상감영과 전라감영에서 여러 차례 간행됐다. 경상감영의 목판본 간행은 전라감영보다 앞선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오는 28일 용학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강연 및 체험에는 동의보감을 목활자와 목판으로 재현한 이력이 있는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동의보감의 목활자본 제작과정 중 인체 도형이 있는 ‘내경편’ 7장을 재현하는 과정에 대해 강연하고, ‘목판화에 새긴 동의보감 이야기’란 제목으로 동의보감을 소재로 한 목판화를 액자로 꾸미는 체험도 진행된다.

한편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에서는 올해 동의보감의 가치를 되새기는 행사가 대구보다 풍성하게 열렸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두 달간 전주한옥마을에 자리한 완판본문화관에서 ‘동의보감, 백세건강을 새기다’란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이 주최하고, 문화재청과 경상남도 및 산청군이 후원한 행사였다. 전라감영에서 목판으로 새겨 동의보감을 간행했던 책판(冊板) 두 점이 공개됐으며, 동의보감을 처음 간행할 때와 같이 재현된 목활자가 최초로 선보였다. 이와 함께 목활자와 목판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도 전시됐다.

전라감영에서 목판으로 새겨 동의보감을 간행했던 책판(冊板)은 전주향교에 소장돼 있다가 현재 전북대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전북대 박물관에 보관 중인 전라감영 책판은 동의보감 책판 150여 장을 포함해 모두 11종 5천58장이다. 반면, 동의보감 책판을 비롯한 경상감영 책판은 대구에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행방이 묘연했던 경상감영 책판은 18종 4천205장이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소에 남아있는 것으로 몇 해 전 알려졌다. 지난 9월 동의보감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전주에 다녀왔다. 한의학의 거점이라고 내세우는 대구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귀한 자료를 소장하고 전시하는 전주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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