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농사 세미나를 했으니

발행일 2021-09-23 15:59: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약 300평의 밭에 마늘을 심었다. 시골에 이사 오고 나서 이렇게 대량으로는 처음 심은 작물이다.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일은 기계의 힘을 빌려 했지만 심는 일은 그럴 수 없어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빌렸다. 별것 아닌 평수지만 농사에 문외한인 우리 부부가 하기에는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 밭이었다.

빈 밭에 무엇을 심을지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농사 경험이 없으니 우선 키우기에 쉬워야 하고, 그러면서도 수고한 만큼의 대가도 있어야 하는 작물을 선택해야 했는데 마늘은 우선 심을 때와 수확할 때만 고생 좀 하면 된다는 이웃 농부 아저씨의 권고에 귀가 솔깃해져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는 뭘 선택할 수도 없었다. 농작물을 심고 키우는 과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그냥 마늘 한번 심어보자는 권고에 홍산마늘이라는 신품종을 심게 된 것이다.

아직 도시에서 일하고 있어서 농사는 그냥 재미 삼아 해보자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할 것 없으면 농사나!’ 그런 생각인가 싶겠지만 올해 봄의 텃밭 농사도 경험이라고 그걸 해보고 나서 ‘어찌 농사씩이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마늘을 심어 놓고 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해져서 시간만 나면 마늘밭을 둘러보게 됐다. 그런 우리를 보고 농사 경력 십 년 정도인 이웃은 “원숭이 새끼 만져 죽인다더니 그놈의 마늘 심어 놓고 눈병 나겠소”라고 웃었지만, 어찌 눈병이 아니 나겠는가. 그 넓은 밭을 우리가 갈고 마늘을 심다니, 이건 우리 인생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눈에는 만경평야를 방불케 하는 그 마늘이 심어진 밭을 볼 때마다 마치 만석꾼 농부처럼 흐뭇해지니 밭고랑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둘러볼 수밖에.

그렇게 이삼일이 지나고 나니 마늘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까치란 놈이 마늘을 톡톡 쪼아내어서 비닐 밖으로 던져 놓았다.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도 없고, “까치가 길조는 무슨, 흉조야 흉조!” 그러면서 밭을 돌아다니며 까치가 쪼아서 내놓은 마늘을 다시 심어주기도 했다. 진짜 농부들이라면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무늬만 농부인 우리는 그마저도 재미있었다. 그냥 심고 가꾸는 일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마늘을 심기 전까지 우리보다는 훨씬 낫지만 역시 반풍수 얼치기 농사꾼인 덕호농장 주인장과 수없이 많은 마늘세미나를 했다. 그가 마늘세미나를 하자는 날은 심심하니 놀자는 날이었지만 “마늘세미나도 하고”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함께 밥도 먹고 수다를 떨며 낯선 시골의 긴 밤을 보내곤 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우리는 그 수많은 밤의 마늘세미나를 통해서 배운 것은 없었지만 막상 그가 빌려준 기계로 밭을 갈고, 준비해 준 토양살충제와 거름을 밭에 뿌리고 이랑에 비닐을 씌울 수 있었다. 그리고 농사꾼 홍씨가 구해준 씨 마늘과 역시 그가 구해준 외국인 노동자 덕분에 무사히 마늘을 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스스로를 딴따라 농사꾼이라 하는 홍씨가 아니면 밭조차 갈 수 없었고 외국인 노동자도 어디서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막가파 농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자주 열렸던 시골 마당에서의 마늘세미나는 결국 그가 모든 걸 해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 우리 마당에서는 또 다른 세미나가 풍성하게 열릴 것이다.

곡란골에 들어오면서 농사를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집만 시골로 옮겨왔을 뿐 직장은 그대로여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시간이 허락할지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시골로 온 이유인 몸을 쓰면서 살기 위해서는 적게라도 농사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마침 집에 딸린 과수원이 하나 있어서 먹는 채소 정도는 얼마든지 키워 먹을 수 있지만 과수원을 경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농사를 짓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만병의 근원이 몸은 쓰지 않고 머리만 쓰는 삶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적당히 몸을 쓰는 삶이 더 건강한 삶이라는 것은 짧은 시골 생활로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요즘 손과 발을 쓰면서 일을 하는 건 아프리카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밭에서 벌레에 물려가며 손발을 쓰고 일을 할 때면 문득문득 떠올랐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손발을 쓰면서 일을 하고 있고 그 삶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곡란골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독서가 텃밭의 일보다 뒤로 밀렸다. 얼굴과 손발이 햇볕에 검게 탔지만 그만큼 나는 더 건강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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