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추석을 사흘 앞둔 9월12일 저녁. 경북 경주시 남서쪽 8.7㎞ 지역에서 규모 5.1의 전진(前震)이 발생했다. 48분 후, 경주시 남남서쪽 8㎞ 지역에 규모 5.8의 더 강력한 본진(本震)이 도달해 대지를 뒤흔들었다. 기상청이 계기로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이었다.

9·12 경주지진은 강력했다. 본진은 경주·대구에서 진도 6, 근처 부산과 울산·창원에서도 진도 5로 감지됐다. 진도 6은 해당 지역의 모든 사람이 흔들림을 느끼고 가옥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그 진동이 상당하다. 당시 본진의 진동은 전국 대부분 지역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등에서도 감지될 정도였다. 지진 발생 직후엔 휴대폰 통화와 문자가 폭주해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갑작스러운 트래픽 증가로 일부 모바일 메신저와 포털사이트가 먹통이 되는 등 일대 혼란이 일었다. 미처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듬해 11월15일, 오후 2시 반 무렵, 경북에서 또 한 번의 큰 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었다. 경주지진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지진의 공포와 위협이 다시 한반도를 덮친 것이다. 도심 근처 얕은 위치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포항 지진의 치명률을 높였다. 규모가 5.8이었던 9·12 경주지진보다 규모가 작았음에도 주택 등의 생활공간에 대한 피해는 훨씬 컸다. 이렇듯 경북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두 차례의 큰 지진은 우리 사회 전반에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불씨를 제공했다.

9·12 경주지진의 경우, 그 원인으로 ‘양산단층의 활동’이 꼽힌다. 옛 기록에서도 양산단층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삼국사기 제9권 신라본기 제9 혜공왕의 기록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진이 났는데 그 소리가 벼락 소리 같았고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다’, ‘경도(京都)에 지진이 있어 민옥(民屋)이 무너지고 죽은 자가 100여 명이었다.’ 기록된 감지 정도와 피해 규모로 봤을 때, 경주에서 진도 6의 진동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양산단층의 활동은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9·12 지진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기상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핵심만 다루자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더욱 촘촘한 지진관측망을 구축했다. 5년간 꾸준히 지진 관측 장비 증설을 통해 지진 관측 공백을 해소해나가는 중이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지진 관측망을 살펴보면 2016년 당시 22개소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 35개소, 2021년 현재 44개소를 운영 중이다. 금년 연말에 7개소의 지진관측소가 추가로 신설된다. 특히 광역시 단위의 넓은 범위 지진동을 관측하는 광대역 속도 지진관측소를 14개소 운영해 대구·경북을 빈틈없이 관측할 수 있게 됐다.

두 번째는 빨라진 조기경보다. 9·12 경주지진 당시 기상청의 조기경보 시간은 26~27초대였다. 국민안전처 긴급재난문자 또한 이원화로 전달 절차가 복잡했고, 통신사의 문자폭주로 인해 긴급재난 문자를 받지 못한 사람이 1천200만 명에 달했다.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가중됐다. 현재는 지진 긴급재난문자(CBS)를 기상청에서 직접 국민들에게 전송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지진조기경보도 지진 관측 후 발표까지 5~10초 정도로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해서 제공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지진조기경보란 지진 발생 시 S파보다 먼저 도달하는 P파를 분석해 지진정보를 보다 빠르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큰 피해를 일으키는 강력한 S파가 도달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지진을 감지해 조치를 취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지진에 있어 ‘5초’는 80%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기에 이는 진일보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지진 대응을 위한 각종 모의훈련이 강화됐다. 9·12 경주지진 이후, 규모 5.8 혹은 그 이상의 지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으로, 각 기관은 규모 6.0 이상의 지진 발생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응훈련을 시작했다. 지난 5월 기상청은 규모 6.0 이상의 가상 시나리오를 구성해 대응훈련을 진행했고,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대피훈련을 함께 실시했다. 이날의 모의 훈련과정을 기점으로 국립대구기상과학관 체험교육에 지진 대피 훈련이 반영됐다. 국민들의 직접 참여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경주지진 발생 후 5년이 지난 지금, 지진 대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유비무환’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측 불가한 지진으로부터 받는 피해와 타격, 그리고 불안을 없애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 준비와 대응체계 마련, 끊임없는 정책적 고민이 거듭돼야 할 것이다. 9·12 경주지진을 비롯해 한반도를 뒤흔든 지진피해의 역사를 타산지석 삼아, 기상청은 앞으로도 지진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박광석 기상청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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