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키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연일 고정관념을 깨고 정곡을 찌르는 직설화법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민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민의힘 대변인을 서바이벌 형식의 ‘토론배틀’로 발탁하는 정치실험도 관행을 깬 참신한 ‘이준석표 정치혁신’에 다름 아니다. 배틀 응모자가 벌써 200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흥행성공은 따 논 당상이다. 모처럼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이 분다. 튼실한 콘텐츠로 알찬 수확을 바라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준석표 혁신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칼자루를 쥔 사람에겐 고춧가루를 뿌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귀담아 듣는 것이 장래를 위해 나쁘지 않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다. 능력만능주의나 실력제일주의, 엘리트주의를 확산시키고 무한경쟁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공정하고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방임상태를 방치할 순 없다.

밥을 같이 먹으러 다니거나 지역 연고가 같은 사람끼리 꽃보직을 나눠 갖는 것보다 당해 분야의 실력 있는 고수를 찾아 쓰는 방식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선거에 도움을 줬거나 같은 학교에 다녔던 ‘내 사람’이라고 무조건 챙겨주는 관행보다 공정한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능력과 실력 위주로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이 좀 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스트를 통한 선발과 배치만이 완벽한 건 아니다. 관용과 배려, 설득과 포용, 인내와 양보, 소통과 감수성 등 시험으로 정량화하기 힘든 품성을 감안해야 한다.

직무분석을 통해 직책별로 요구되는 자격요건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인재를 배치시키는 인사원칙을 대외적으로 공표해 둘 필요가 있다. 모든 직책을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자는 것이다.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안심하고 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미리 단디 챙기는 게 장땡이다. 거대한 제방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틈에서 구멍이 생기고 결국 무너진다.

정당 대변인 직책은 토론과 소통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 만큼 ‘토론배틀’을 거쳐 발탁하고자 하는 취지를 천명하는 선행절차가 필요하다. 토론배틀이 실질적으로 성공하려면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구조설계를 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심사기준을 합목적적으로 세심하게 설정해야 한다. 노련한 진행자와 유능한 심사위원도 성패를 가르는 변수다. ‘미스터 트로트’, ‘나는 가수다’ 등 성공한 프로그램의 포맷을 벤치마킹한다면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심사기준엔 다양한 시각이 투영돼야 한다. 토론배틀이 말만 번지러 하고 영양가 없는 말재주꾼을 뽑는 싸움터가 아님을 미리 밝혀두는 의미다. 알맹이 없는 말을 술술 풀어내고 개념 없이 아무데나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사람, 사소한 말실수를 트집 잡아 물고 늘어지느라 정작 토론의 큰 줄기를 놓치는 사람, 닭싸움 하듯이 볼썽사납게 파닥거리는 사람, 무례한 태도로 근거 없는 말을 무책임하게 한다거나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사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뻑하면 흥분하는 사람 등을 스크린할 안전장치가 심사기준이다.

간판은 배틀이지만 싸움판이 돼서는 안 된다. 의견을 서로 나누고 합의를 도출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정치혁신이 성공하고 또 지속가능해진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설득하는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토론에서 진정 이기는 방법은 상대방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잘 듣고 그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어떤 주장의 취약점이나 논리적 비약을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자기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관철시키는 능력 등도 중요하지만 자기주장이 틀렸을 경우 이를 솔직히 시인하고 상대방의 주장도 채택할 줄 아는 품성,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태도 등도 간과할 수 없다.

어떤 제도든 양날의 칼, 잘 운용되면 약이지만 잘못 운영되는 순간 독으로 작용한다. 토론배틀도 마찬가지다. 명석한 두뇌와 후천적 노력 그리고 방송출연으로 획득된 소통능력과 감수성 등은 이준석 대표의 최대 강점이다. 이러한 강점을 잘 살려 ‘이준석표 정치혁신’이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국운이 융성하게 되기를 고대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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