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최근에 매주 한 번씩 경기도 성남을 오가는 일이 생겼다. 운전을 해서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동대구역에서 SRT 열차를 이용해 수서역까지 간 다음 이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성남까지 이동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지하철에서 평소 잘 보지 못하던 광경을 봤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청년이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게 평소의 지하철 내부 모습이었다. 슬며시 그 청년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곁눈질로 살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이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된 화두가 ‘공정’ 아니던가. 지하철에서 읽기엔 다소 무거운 주제의 책으로 보였지만 그게 뭐 문제랴.

그러고 보면 요즘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만큼 평소에 책을 읽는 사람이 줄었다는 반증이다. 인터넷의 검색엔진 혹은 시간보내기에 적합한 휴대폰의 오락거리에 책이 밀려난 지는 오래다. 오죽했으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더난출판사/2016)의 저자는 특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멸종위기종’이라고 했던가 싶다.

책읽기의 중요성은 많은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는 나라다. 하지만 문해율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문해율(文解率, literacy rate)은 문맹률의 반대말로 글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지난해 2월 ‘미래교육 플러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율은 25%에 불과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문장을 읽고도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실질문맹률이 75%에 달한다는 말이다.

EBS가 중학교 3학년 학생 2천400명을 대상으로 문해력을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들 중 약 30%가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이들 가운데 11%는 초등학교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 조사 결과 역시 중학생중 15%는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기초학력 미달자로 드러났다.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EBS 다큐멘터리 중 한 장면이다. 고등학교 2학년 사회 수업 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가 ‘데칼코마니’였다면서 가제의 뜻을 물어보자 “랍스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는 기득권, 위화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데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역마살은 어느 부위예요?” 묻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피다’를 ‘얼굴에 피가 나서 다쳤다’로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맥락을 추론해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을 키우는 데는 독서가 최고다. 꾸준한 독서 외에도 신문기사를 정독하거나 일기나 블로그 등에 단문이라도 자주 글을 써보는 것도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지속해서, 집중적으로 읽기와 깊이 읽기에 많은 시간을 들일 것을 권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유튜브 등 영상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훨씬 더 쉽게 정보를 얻는 편리함이 책을 읽지 않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부에 있는 페닌슐라 발도로프학교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부모의 대부분이 IT기업 종사자인 이 학교엔 스마트폰, 컴퓨터는 물론 어떤 디지털기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곳에서 오히려 책을 읽고, 자신감과 독립적 사고를 키우고, 예술적 표현을 배운다.

난 최근 들어서야 겨우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곧 ‘멸종위기종’이 됐다. EBS ‘당신의 문해력’이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성인 문해력 테스트를 해보고 나서다. 독자분들께 감히 테스트를 해보라고 청한다. 책읽기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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