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봄의 말/노중석

한 아름 꽃을 안고 등걸마다 다가서서/마을 구석구석 향기를 끼얹는데/아무도 낯익은 얼굴 알아보지 못한다

「시조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이미지북, 2018)

노중석 시인은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비사벌 시초’, ‘하늘다람쥐’, ‘꿈틀대는 적막’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이종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중석 시인의 시조가 지닌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잘 다듬어진 정갈하고도 세련된 언어다. 작품 전체가 미리 계획된 설계도에 따라 제대로 지어진 건축물처럼 탄탄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단시조 형태의 극도로 짧은 서정시에다 중후한 주제를 역동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적절한 해석이다. 한 문장으로 완성된 ‘봄의 말’이 그것을 잘 증명해 보인다. 한 아름 꽃을 안고 등걸마다 다가서서 마을 구석구석 향기를 끼얹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봄은 분명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있다. 그 증거로 한 아름 꽃을 안고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향기를 끼얹는데도 그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니 봄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무엇이 바빠서인지 도통 모를 일이라고 봄은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법도 하다. 이것은 또한 넓게 볼 때 자연의 말이라고도 봐도 될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사람다운 삶이 아니라는 뜻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

그는 또 ‘직지천의 봄’에서 서경과 서정의 행복한 교직을 보여준다. 솔방울 줍던 아이와 꽃씨를 따던 아이가 아스라이 멀어져간 텅 빈 동구 밖에 직지천 지즐대는 물소리가 옛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본다. 그리고 새날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 눈 못 뜨는 꽃사태 진 산과 들은 날아오를 것만 같은데 두둥실 내 마음이 먼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오솔길 하나씩 끌고 산모롱이 돌고 돌아 직지사 암자들이 둥지 튼 황악산 자락을 걸으며 오늘도 여전히 솔바람 소리가 떠날 줄을 모른다, 라고 말하면서 봄의 정경을 통해 마음속의 갖가지 심상을 짚어나가고 있다.

단시조 한 편을 더 보겠다. ‘폭포’다.

사는 일/벼랑이란들/어찌 다 피해 가랴//깊은 소/곤두박혀/우레 소릴 낼지라도//빛 부신/무지개 한 채/덩그렇게 놓는다

진실로 사는 일은 벼랑의 연속이다.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때로 깊은 소에 곤두박혀서 우레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폭포 즉 열정적인 어떤 한 사람의 삶은 빛 부신 무지개 한 채로 놓인다. 그러니까 신산을 넘어 광영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는 사실을 ‘폭포’는 명징하게 형상화해 보인다.

바야흐로 활짝 피어난 봄꽃들이 무수히 지면서 봄은 더욱 깊어졌다. 더없이 좋은 봄날이다. 봄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일 일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삶을 윤택케 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봄날에 봄을 떠나 살 수 없으니 봄을 온몸으로 보듬어 안고 마음껏 즐길 일이다. 어떤 이는 봄꽃을 많이 바라보라고 했더니 질릴 지경이다, 라는 말을 들려줬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유를 가지고 봄날에 피는 꽃과 마음을 나누면서 자신 앞에 놓인 미쁜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ags 노중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