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대월동화’가 이제는 사자성어가 아닌 고사성어

이주형

경제사회부장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 문을 닫는다.

대구백화점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애정은 남달랐다.

‘대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1980~90년대 대구 젊은이들의 약속장소는 ‘대백남문’ 아니면 ‘대백정문’이었다.

1969년 12월26일 문을 연 대구백화점 본점은 지하 1층, 지상 11층으로 250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1980년대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이 쌍벽을 이루면서 대구 유통시장을 이끌어갔다.

명절 전후 백화점은 늘 발디딜 틈 없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들은 버킷리스트였다.

시내 백화점에서 산 물건이라 하면 지금의 명품 부럽지 않은 귀중품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대구백화점은 수성구 상권을 흡수하기 위해 1993년 대백프라자를 수성구 길목에다 건립했다.

2002년 본점과 프라자점을 합쳐 역대 최고 연간매출인 2천900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 기세는 1970년대만 해도 서울 유명백화점도 울고 갈 정도였다.

신세계는 1973년 대구에 진출했지만 대구백화점의 아성과 오일쇼크에 따른 소비부진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년 만에 철수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003년 롯데백화점이 대구역에 입점한데 이어 2011년 현대백화점, 2016년 대구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대구백화점의 입지는 쪼그라들었다.

유통공룡들의 압박에 못 이겨 명품들이 빠져나가고 거대자본을 내세운 할인 공세에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대구백화점도 서서히 무너져갔다.

50대 전후 고객들은 ‘그래도 나는 대백만 간다’고 애정을 보냈지만 애정만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대백프라자도 명품 하나 없는 백화점으로 동네 주민들이 장을 보는 백화점 정도로 전락하면서 앞으로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구백화점과 쌍벽을 이루던 중구 동문동에 위치한 동아백화점도 지난해 2월 문을 닫았다.

동아백화점을 인수한 이랜드리테일도 주변상권의 쇄락과 브랜드 철수를 견디지 못했다.

동아백화점 본점은 1972년 9월 지역 건설사인 화성산업이 유통 사업에 진출하며 문을 열었다.

대구에는 ‘대월동화(대구백화점 월요일 휴무, 동아백화점 화요일 휴무)’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할 정도로 두 백화점은 지역민들의 뇌리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잘 견딘 편이다.

부산 광복동 미화당백화점은 약속 장소의 1번지였다. 1949년 문을 연 부산 최초의 향토백화점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났다. 1981년 문을 연 부산의 유나백화점도 1997년 부도를 맞고 1999년 최종 폐점했다.

1979년 대전 중구 선화동에 문을 연 동양백화점은 외환위기로 무너져 2000년 유통대기업에 넘어갔다.

광주의 경우 호남 최초 화니백화점은 1997년 부도를 맞았고, 1986년 문을 연 가든백화점도 2010년 폐업했다. 1995년 개점한 송원백화점은 1998년부터 현대백화점에 경영을 위탁하면서 향토백화점 시대를 마감했다.

대구시민들은 백화점 뿐 아니라 지역기업에 대한 남다른 애향심이 있다.

소주는 금복주만 먹고 은행은 대구은행만 간다는 시민들이 부지기수다.

다른 지역민들이 보면 ‘꼰대’라고 놀릴 수 있지만 대구시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송금하려고 통장번호 불러달라고 할 때 대구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이면 보이스피싱을 한번 의심해 본다.

그러나 지역민들이 보내는 사랑에 비하면 금복주와 대구은행 등 지역기업들의 보답은 미미해 보인다.

오히려 기업윤리를 어기는 일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지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대구백화점이 무너진 것을 거울삼아 지역 기업들은 대구시민들의 애향심에만 기대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적이고 시대흐름을 앞서가는 경영으로 ‘대월동화’가 사자성어가 아닌 고사성어가 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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