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갑질 표현까지 등장..가격은 오르고 상품성 조건은 내려||역외 건설사 점유율 넓히지

▲ 윤정혜 경제사회부 부장
▲ 윤정혜 경제사회부 부장


'정말 이래도 되나요. 대구 시민은 봉인가요.’

얼마 전 대구 최대 온라인 부동산커뮤니티에 오른 게시글이 화제다. 분양 중인 수성구 아파트의 견본주택을 보고 온 후 착잡함을 드러낸 글이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월세살이 각오까지 하며 이른바 '영끌'해서 준비했던 아파트 청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견본주택을 보고는 실망감을 넘어 대구를 무시하는 기분 마저 들었다고 했다.

명색이 대기업 건설사인데 마감재나 도색은 몇 년 전 그대로이고, 안전을 위한 장치나 발코니 확장하면 제공받던 당연한 것들이 빠져 있었다는 거다. 대구 시민을 호구로 보는 건설사의 갑질이라는 거친 표현도 썼다.

해당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분양하는 게 아니라 호구 모집하는 것 같다’ ‘아몰라 비싸게 받을게 그래도 살 사람 줄섰어’ ‘대구는 건설사에게 호구 제대로 당하는 중’ ‘청약하려고 나부터 안달나 있는데 건설사가 갑질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등 대체로 공감을 드러내는 글이 대부분이다.

글 하나를 일례로 들었지만 최근 대구 분양시장은 내놓으면 완판 되는 호조세가 몇년 간 지속됐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 프리미엄이 형성되면서 분양받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까지 보인다. 그래서 분양시장 주도권을 건설사가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조건이 나빠지는 건 사실이다.

발코니 확장비나 유상 옵션이 그렇다.

얼마 전 대구 남구에서 분양된 33평(전용면적 84㎡) 발코니 확장비가 3천950만 원에 책정됐다. 남구에서 확장비로 4천만 원에 육박한 단지는 처음이다. 분양가와 별개로 발코니 확장비는 건설사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권한이 있는 남구청은 ‘강제할 권한이 없다’며 건설사 요구대로 승인을 내줬다. 청약을 넣은 대구 시민들이 그만큼 비용을 더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대구 신규 공급 아파트 평균 확장비는 2천만 원 초반대. 이마저도 1년 전보다는 50%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사실상 강제 사항인 발코니 비용을 급격히 올려도 지자체의 브레이크가 없다보니 계단식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선택사항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수성구 분양 단지에는 17개 항목을 패키지로 묶어 3천만 원 중반대와 7천만 원 중반대에 판매 중이다. 또 다른 단지 역시 드레스룸의 내부 수납장 마저 옵션으로 돌렸다. 33평 옵션 비용만 2억 원대.

유상옵션을 뺀 주택 내부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나올 정도다.

브랜드에 대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특히 대형 건설사가 내놓은 상품이나 조건은 ‘아몰라, 비싸도 대충 만들어도 살 사람 줄섰어’ 그 모습이다.

그래서 대구 시민 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형 역외 건설사들이 청약자만 봉으로 보는 걸까.

시공사가 결정된 대구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90%가 역외 건설사다. 대구 주택건설시장을 역외 건설사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의 지역 사회 기여도는 찾기 어렵다.

본공사 이전 단계인 모델하우스 건립부터 분양·홍보사업도 역외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지역 관련 업체는 ‘시장은 확대됐지만 수주는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본공사 전 단계에서 지역 업체 참여를 의무화하거나 권장할 장치가 없는 탓이다. 이들 건설사의 지역 사회 공헌 소식도 듣기 힘들다. 수익만 챙겨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지자체가 목소리 내야 할 때가 아닌가.

지역의 중소 규모 건설·디자인 업체 대표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가만히 있어도 사업승인 잘 나는데 지역업체와 상생이나 지역사회 기여에 고민이라도 할까요”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