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석 기상청장
▲ 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큰 것은 바리만 하고 작은 것은 계란만 했다. 인가의 장독이 박살났다. 정주·안주에서도 폭풍우로 기와가 모두 날아가고, 우박이 9치나 쌓여 하루가 지나도 녹지 않았다. 벼가 모두 손상돼 산과 들이 빨갛게 됐다.”

위 기록은 ‘명종실록’의 한 부분이다. 조상들에게 우박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박이 무서웠던 것은 다른 기상현상보다 피해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농업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조상들에게 우박은 공포이자 하늘의 경고였다.

오늘날에도 우박은 농가에서 하얀 재앙이라고 불릴 만큼 큰 피해를 가져오는 기상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박은 주로 5월과 6월, 9월과 10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농사를 시작하고 수확하는 시기와 겹치게 된다. 이로 인해 농민들이 우박으로 입는 경제적 손실과 상실감이 크다.

지난해에도 4~6월 사이 봉화, 영주 등 13개 시·군에서 4차례에 걸쳐 0.2~2㎝의 우박이 내려 6천368㏊의 농작물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경북도는 재해복구비 84억 원을 지원했다. 우박피해는 해마다 그 해의 기상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농작물 재해보험 지급현황을 기준으로 보면 2012년에 우박피해가 8천960건에 달해 가장 많았고, 피해액으로는 2017년 약 1천389억 원이 지급돼 피해 규모가 컸었다.

우박은 주로 채소의 잎을 상하게 하거나 사과, 배 등 열매에도 큰 피해를 준다. 특히, 초봄 꽃눈이 우박에 의해 상처를 받거나 떨어지는 경우 열매 결실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수확기 열매가 우박 피해를 받으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또한, 비닐하우스 등 온실에 피해를 주기도 하며, 심할 때는 가축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비행기 및 차량에도 손상을 주기도 한다.

우박은 흔히 먹구름이라 불리는 적란운, 즉 소나기구름이 발달될 때 구름 꼭대기의 온도가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서 빙정(얼음입자)이 형성되면서 발생한다. 이 빙정이 구름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성장하게 되면서 눈으로 발달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낙하 도중에 과냉각된 구름 알갱이가 빙정과 충돌해 달라붙어 크기가 점점 커지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 빙정이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해 낙하속도가 구름 속 대기의 상승하는 속도를 넘을 때 지상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우박이라고 한다.

우박은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지는데 지름이 5㎜ 미만은 ‘싸락우박’이라 불리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우박은 직경이 5~50㎜이고 그 이상이 되는 것도 있다.

이에 기상청에서는 우박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레이더 원격탐측 기능을 강화하고 천리안 위성의 대류운 탐지영상과 ‘레이더 우박 영상’을 개발 및 활용해 실시간 우박 신호를 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실시간 감시를 위해 CCTV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박은 비교적 좁은 지역(2~20㎞)에서 단시간(3~30분)에 발생해 관측이 매우 힘들 뿐 아니라 정확한 통계적인 특성을 분석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어 사전에 우박 발생 지역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박이 예상될 때, 사전대비 또는 사후관리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전에 그물망을 나무에 씌워줘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물망은 우박이 과수에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박은 워낙 돌발적인 현상이라 완벽한 예방법이 없어 경영적인 측면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과수의 경우, 피해 과실을 따내되, 나무 성장의 안정을 위해 일정한 과실은 남겨 둬야하며, 상처 부위에는 살균제를 발라 2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또한, 미리 농작물재해보험 상품에 가입해 우박처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부터 농민들이 피해구제를 받는 방법이 있으니, 우박 사전대책뿐만 아니라 사후관리 측면도 따져보며 실효성을 높일 근본적인 대책을 실행해 나가길 바란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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