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후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단 초청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나눈 가벼운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함께 백악관 내 로즈가든을 산책하던 박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설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 않느냐”며 “내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는데 팁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Be natural(자연스럽게 하라)”이라고 말했다며 소개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견줄 만한 연설의 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열변을 토해내며 청중들의 피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해 지지를 끌어내는 쪽이다. 오바마의 연설은 정반대이다. 일상적인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그래서인지 오바마의 연설은 영어 교재로도 인기가 높다.

오바마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꼽는다. 게네랄파우제는 합주곡이나 합창곡에서 모든 악기가 일제히 쉬면서 악곡의 흐름을 갑자기 정지시키는 기법이다. 연설에 이 개념을 대입시키면 침묵에 해당한다. 침묵이 말보다 더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오바마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 1월12일 열렸던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 오바마의 연설이다. 이 사건으로 숨진 여덟 살 소녀를 언급하던 그는 연설 도중 갑자기 침묵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잠깐 동안 놀란 청중들은 곧 그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 책임감 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침묵의 연설은 51초간 이어졌다. 어떠한 말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51초간의 침묵은 뉴욕타임스가 “2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며 찬사를 쏟아낼 정도였다.

이탈리아 아동교육자이자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인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 활동은 침묵이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을 둥글게 앉힌 후 30초, 혹은 3분 등 일정시간 침묵하게 한다. 단순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동안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는 활동이다. 그런 다음 침묵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발표를 하게 한다. “침묵은 집중력을 높여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준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말이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침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격언이다. 때에 따라선 침묵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테오프라스토스도 침묵을 옹호했다. “바보는 말을 할 줄 몰라 침묵하지만, 강자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사회에선 강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과격한 말로 자기 편 끌어들이기에만 혈안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침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침묵이라는 무기’를 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코르넬리아 토프는 오히려 말의 양을 조절해 침묵을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툭툭 내뱉기만 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해야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잠시라도 고민해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불편해 하는데도 열혈 지지층만을 바라보고 하는 말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나아가 침묵의 기술을 연마하라는 다그침이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코앞이다. 선거라는 게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막말 한마디에 따라 당락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당락은 침묵의 기술을 누가 더 잘 구사하느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침묵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곧 자기 혀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은 선거에서 당락을 가를 수도 있을 만한 탈무드의 가르침이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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