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도합 약 5천억 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서울시민에게 지급하고 이와 별도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약 5천억 원의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줄 계획임을 발표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제4차 재난지원금이 예정돼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5차 재난지원금까지 논의되고 있다. 게다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모든 서울시민에게 인당 10만 원씩 위로금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서울에 돈벼락이 떨어질 모양이다.

경제정책의 실패와 코로나 펜데믹으로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돈을 푸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이든 돈을 받는 쪽이든,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다. 경제와 민생만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정직하게 정책을 펴야 할 때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정권 장악을 위한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여 잔머리를 굴려선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사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불편부당한 자세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돈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조건을 달거나 속 보이는 돈은 찜찜하다. 당선 되면 돈을 주겠다는 것은 표를 찍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주겠다는 조건부 약속이고, 구체적 방안이 미정인 상태에서 선거를 앞두고 돈을 돌리겠다는 공언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꼼수다. 쉽게 말하면 둘 다 매표행위다. 나중에 그 돈의 몇 배를 다른 명목으로 청구한다면 주권자에 대한 심각한 배임이다. 재산세와 종부세 그리고 건보료 등이 크게 인상돼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은 심상찮은 조짐일 수 있다.

돈을 주겠다는 사람은 현금살포 약속을 매표행위가 아니며 선거와 무관하다고 발뺌한다. 높은 분들이 그렇게 말하니 믿어야 될 터이지만 그렇게 하려고 해도 미심쩍은 부분이 가시지 않는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봇물이 터진 것도 아니고, 무단히 공짜 돈을 그렇게 쏟아낼 리 없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선행을 행하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할 일이다. 야단스럽게 떠벌리고 홍보하는 통에 의심만 굳어진다. 선거와 진짜 무관하다면 굳이 그 무관함을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진심은 그냥 놔둬도 통한다. 진실한 자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신뢰는 정치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다. 정직은 신뢰를 쌓고 거짓말은 신뢰를 무너트린다. 따라서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고, 거짓말은 공직자가 가장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할 악덕이다. 정직한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지, 그 판정은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정직은 생명력이 영원하고 거짓은 세월이 가면 그 정체가 드러난다. 정부의 각종 재난지원금과 서울시장 후보자의 위로금이 선거와 무관하다는 말의 진위 판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유사행적을 돌아보면 최근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터다.

지난 총선에서 전 국민에게 인당 25만 원 정도의 재난지원금을 준 일이 여당의 압승에 기여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돈을 뿌려서 재미를 제대로 본 셈이다. 그러한 전례는 최근의 재난지원금 살포 약속을 선거용 매표행위로 추론하는 합리적 근거로 기능한다. 그러한 의심은 당시 여당 원내대표의 입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후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천기를 누설한 셈이다. 그 후보가 당선되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제의 그 후보가 당선되자 실제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돌렸다. 서울시장 여당 후보의 위로금 공약도 그런 선행학습의 결과일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이제 새로운 깨침을 얻었다. 세금이 남아돈다는 사실과 그게 엉뚱하게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뿌려대고도 재정이 끄떡없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평소 세금을 불요불급한 곳에 펑펑 썼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현금살포 외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마구 벌이는 걸 보노라면 세금을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함부로 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곳간을 지키고 혈세를 아껴 쓸 사람을 제대로 뽑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혈세를 눈먼 돈으로 방치할 순 없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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