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춘래불사춘이다. 승자의 오만과 후안무치, 패자의 굴욕감과 허탈, 분노가 약동하는 대자연의 합창 소리를 덮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화는 저 혼자 피었다 지고, 개나리가 만발해도 눈길을 주는 사람은 확연히 줄었다. 거리 두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출퇴근 무렵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역에 나가보라. 그들의 퀭한 눈빛과 핏기없는 표정, 축 처진 어깨를 유심히 살펴보라.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삶이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많은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 이제 답할 기력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요즘이다.

“어차피 한두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이 지나가겠지 다들 생각하는 중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털어봐야 차명으로 다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빨면서 다니련다ㅎ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땅 투기 비판 여론에 대한 비문투성이의 게시글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떠 오른다. 그는 가진 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내가 누리는 것은 내 노력과 능력 덕분이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이 LH 직원은 열심히 공부해 그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내부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도 능력자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 무능력한 사람들의 비난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만큼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식민지와 6·25, 개발독재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람은 비슷한 처지와 환경에서 삶을 시작했다. 구성원 절대다수가 동일한 출발 선상에서 각개약진하던 시절에 능력주의는 사회를 활기차게 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이 있었다. 지금은 부의 편중과 양극화의 심화로 출발선이 서로 다르다. 출발 지점에서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한 시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에 왜 그렇게 분노하겠는가.

모든 것을 능력주의 관점에서 설명할 때 승자는 오만하고 패자는 굴욕감과 열패감 때문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고용노동부도 ‘능력과 성과에 따른 임금 인상이 새로운 흐름’임을 강조한다. 대기업도 ‘직무 능력만 본다’는 기치 아래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지는 것일까? ‘공부 못해서 우리 회사에 못 와놓고 꼬투리 잡았다고 조리돌림 하나’라고 말하는 LH 직원은 마이클 샌델이 지적하는 ‘행운’의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내가 운이 좋아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겸손한 마음으로 뒤처진 자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베풀어 줄 수 있다.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폭풍 인기를 얻고 있는 일부 ‘먹방’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리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완성된 요리만 밥상에 차려놓고 이 음식은 정말 맛있다며 먹는 모습을 찍어 올리면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먹방에서는 식자재의 구매와 다듬기부터 요리 과정 전체를 보여주며 실패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공개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모든 과정에 자신을 이입해 함께 성취감을 느끼거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임연선어 불여퇴이결망(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물가에서 물고기를 부러워하느니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게 낫다’ 중국 전한 시대 회남왕 유안이 편찬한 ‘회남자’에 나오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고기를 탐하기 보다는 지루함을 참고 그물을 짜는 과정을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는 과정보다는 최종 결과만 보고 무조건 환호하거나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풍토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패자 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 오만한 능력주의, 과정을 불문에 부치는 한탕주의와 결과중시주의, 패거리 문화와 ‘빠 정치’ 등에 대한 냉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분열과 갈등의 치유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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