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훈
▲ 이명훈
이명훈

소설가

문화는 컬쳐(culture)에 해당된다. 컬쳐는 컬티베이트(cultivate) 즉 경작하다에서 비롯됐다. 농업과 관계 깊은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 우리가 통상 쓰는 문화라는 말은 농업과 관계가 그다지 깊진 않아 보인다. 농업과 다소 거리감이 있는 뉘앙스를 풍긴다. 컬쳐의 번역어인 문화에서 문(文)의 환기력도 작용할 것이다.

문명은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에 해당된다. 후자는 시빌(civil) 즉 시민, 도시적 성격이 있다. 문명과 시빌라이제이션 사이에도 역시 괴리감이 있다. 후자가 도시와의 관계가 짙은 반면에 문명은 그 이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나는 인더스 문명을 찾아봤다.

인더스 시빌라이제이션이라고 나온다. 기원전 3천 년 경에 인더스 강가에서 발현된 집단적 행태가 고작 도시적인 무엇인가.

물론 길이 닦이고 공동 장소가 만들어지고 집회가 생겨나는 등 도시적 요소가 강했을 것이다. 시빌라이제이션은 단지 이처럼 도시적 속성이 강한 건데 그것이 문명으로 번역돼 우리는 좋게 말하면 확장된, 나쁘게 말하면 과장된 상태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컬쳐니 시빌라이제이션에 해당되는 동양 고유의 어휘가 있을 것이다. 동서양의 사유 체계가 다른 만큼 보다 혼융적인 문자가 있을 수 있다.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된 이후 서양어의 번역어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번역어인 문화와 문명을 함께 엮어서 들여다봤다. 어원으로 보면 전자는 농업 기반, 후자는 도시 기반이다. 차이가 명료하다. 둘 사이의 관계도 선명하다.

하지만 번역어인 문화와 문명은 둘 사이에 차이보단 공통점이 강해 보인다. 두 단어 모두에 문(文)이 들어가는 탓도 있다. 하필 같은 글자를 사용해서 본래의 뜻으로부터 왜곡 가능성이 있다. 경작과 도시화라는 구체적 성격이 변모됐다고 볼 수도 있다.

문화와 문명의 차이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경작, 도시화 이 두 의미가 간과된 상태에서의 토론 성격이 컸다.

그 자체의 장단점이 있지만 번역의 문제는 크게 지적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번역 문제를 넘어서 문화의 개념, 문명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를 야기시킨 면도 있다.

물론 문화와 문명에 대해 서양의 기원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개념 정의를 해나갔으면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도 서구에서 비롯된 개념들에 대한 정확한 인지에서부터 시작됐어야 옳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것은 미래 문명과 직결된다. 미래 문명은 휴쳐 시빌라이제이션으로 돼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도시화와도 밀접하다. 코로나가 음식에서 왔고 그것은 도시의 음식 문화와 긴밀하다. 도시로 인해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되고 그것이 극복돼야 할 미래 문명에 도시적 어감이 들어감은 마땅치 않다.

중요한 흐름이 바뀌는데 과거적 특징에 머문 용어에 매몰됨은 문제의 핵심을 간과시킬 수 있다.

휴쳐 시빌라이제이션에서 그 후자는 철학적 관점에선 바뀌어야 타당하다. 그에 따라 문명이란 단어 또한 바뀌어야 하는지도 숙제가 된다.

문화가 컬쳐를 제대로 반영 못했듯 문명이 시빌라이제이션을 제대로 반영 못한 상황에서 이중삼중의 과업이 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흐름을 도시적 속성에 가둘 수는 없다. 그 지점에 철학적 메스를 대는 일 역시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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