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배낭 같은 말이 지나간다 늙었다 그 말의 눈매가 스치자/ 진실은 흰 천을 걷어낸 미이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끔찍해서 모두 고개를 돌리고 말,/ 대화가 더러워졌다 우리는 그날 진실했을까 사실만 말했던 걸까 오래된 말가죽 냄새가 난다/ 그들은 아무런 희망도 남자 않은 패잔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 거리조차 탈출할 수 없겠지만 결코 항복하지 않을 절망에 빠진 군대로 말입니다/ 늙은 말이 거리의 단단한 바닥을 후벼 팔 듯 턱을 부빈다 김 오르는 여물처럼 피어오르는 먼지, 말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온 거리의 개가 다 짖는다 채찍이 허공에 멈춘다/ 어둠이 내려도 지독한 치욕은 그들을 비탄의 구덩이에 구겨 넣고 밟아댈 것입니다/ 입 안에서 으적으적 씹히는 모래, 이렇게 죽는구나 온 몸에 치욕을 밀어 넣고 삼키며, 숨도 못 쉬며 죽어가는구나 죽어가는 늙은 말 긴 속눈썹 젖은 물기/ 거리는 단 한 점 미동도 없어, 다만 주점의 네온이 반짝 켜진다

「비열한 거리」 (작가콜로퀴엄, 2003)

‘비열한 거리(Mean Streets)’는 1973년에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마피아 영화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갱스터의 이중성과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연출된다. 동일한 제목의 한국영화도 있다. 2006년에 개봉한 유하 감독, 조인성 주연의 깡패 영화다. 두 친구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 ‘비열한 거리’도 섬뜩하고 비장하다. 축 처진 늙은 말이 보는 인간의 거리는 잔혹하다. 자신의 향락과 영달을 위해 교언영색으로 속내를 감추고 남의 뒤통수를 칠 궁리만 한다. 공정, 형평, 정의 따위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뿐더러 거리낌 없이 남을 해친다. 앞에선 웃는 낯으로 손을 잡던 사람이 뒤로 돌아서선 등허리에 비수를 꽂는다. 진실은 흰 천에 가려진 박제된 미라다. 그 끔찍한 모습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항간의 말은 욕설투성이다. 그 욕설 속에서 진실한 모습을 찾는 일은 오물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오물더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 듯 거리엔 역한 말가죽 냄새가 진동한다. 서로 자신의 욕심만 부리다간 모두 다 폭 망하는 법이다. 거리엔 희망을 잃은 패잔병으로 가득하다. 치욕적인 패배의 원인이 과욕과 이기심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이에나처럼 거리를 서성인다. 선의가 선의로 끝나지 않은 나쁜 기억으로 인해 선의로 포장한 악행만 횡행할 따름이다.

굶주린 말이 맨땅을 후벼 파보지만 모래만 씹히고 먼지만 날린다. 이제 남은 것은 울음뿐이다. 절망한 말은 하늘을 보며 울부짖지만 개들만 짖어댈 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당근은 없고 채찍만이 허공에 뜬다. 지친 말은 비열한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슬픈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기다린다. 황량한 거리엔 선술집의 등불만 무심하다. 비장미가 압권이다.

비열한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른 거리를 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기심이란 본능은 사람 사는 거리를 비열하게 만들고, 부조리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운명은 인간을 고통의 바다로 이끈다. 그나마 인간 세상을 비추는 빛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시일 터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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